우리, 다른 세계에서 만나요
인간의 근본적인 외로움을 사랑으로 보듬는 영화 시월애는 시월의 마지막 날에 추천하고픈 영화다.
평행 우주론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풀지 못할, 그렇게 큰 우주에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경우의 수로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다른 경우의 수로 존재해 다른 삶을 살아가고, 매분 매초 새로운 경우의 수를 선택한다는 것은
늘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곤 했던, 내 지나간 시간들에게 조금은 위로가 되곤 한다.
또 다른 우주에선 내가 다른 선택을 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겠지 하는 생각들.
일 마레라는 공간과 우체통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른 시간, 다른 우주에 사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게 된다.
그들은 편지로 소통하면서 각자 다른 시간 같은 공간에 존재함을 깨닫는다.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린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느 시공간이 뒤틀린 그 접점에서 만나게 된 것 같아요.'
영화에 나오는 두 남녀에게는 모두 외로움이 존재한다.
아버지와의 갈등과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낸 슬픔 등과 같은 근본적인 사랑에 관한 외로움이다.
그 고독을 어떻게 이겨나갈까 라는 근본적 물음에 남자와 여자는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받는다.
절대 닿을 수 없는 상대방이라는 점이 그들을 더욱 진실되게 만든 것일까?
절대 닿을 수 없는 그 상대방을 서로 사랑하게 된다. 여기서 또 다른 우주가 생겨난다.
비극과 희극의 우주.
지나간 연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파하는 여자를 위해 남자는 자신의 사랑을 숨기고 여자를 돕는다.
훗날 다른 미래에서 여자는 남자가 자신의 사랑을 위해 희생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우주 끝에 여자는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희극과 비극을 모두 선물해, 코 끝 시린 겨울과 그 안의 따뜻함을 모두 안겨준다.
다른 우주에 존재할 우리를 꿈꾸기도 하고, 절대 닿을 수 없는 그 시공간이 언젠간 뒤틀려 내게 오지 않을까 라는 판타지적인 희망을 갖게 한다.
이 영화의 희극은 영화가 끝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여자의 세계에서는 이미 죽고 없는 남자가,
남자의 세계에서 여자를 다시 찾는다.
긴 이야기로 우리의 사랑을 다시 시작해보자고 고백한다.
물 위에 떠 있는 일 마레, 그를 둘러싼 안개, 살짝 시린 바람마저 포근해 보이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우주에서 시간이라는 에너지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은 오직 사랑이다.
또 다른 세계에서의 그들의 재회가 그걸 말해준다.
시월의 마지막 날, 이 밤에 나는 너를 떠올린다.
우리도 다른 우주에서는 행복하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 사랑이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그래서 너에게 닿을 수 있다면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나 너를 만나 사랑했던 그 시간들이 이미 말도 안 되고 평범하지 않은 기적의 연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