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오 Jun 12. 2019

밤산책

만족하는 삶

밤산책이 좋다.

혼자서 사색하는 밤산책도,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밤산책도.


엄마가 저녁 먹은 게 소화가 잘 안된다며 산책 가자고 한다.

동네 아파트에 들장미가 여기저기 손을 내밀고 붉게 빛난다.  

"이것 봐. 장미가 나 좀 봐달라고 흐드러지게 피었다."

"장미 진짜 이쁘다."

"낮에는 더 이뻐. 여기 낮에 지나가면 얼마나 이쁜지 몰라."


꽃다발은 싫어하면서 꽃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

바쁜 걸음에 지나쳐버리는 길가에 핀 꽃들에는 언제나 엄마의 시선이 닿아있다.





"엄마, 난 원장님 아들이 요새 참 부럽다."

"응, 왜?"

"그냥. 부모님 여유 있으니까 일찍 유학 가서 뉴욕대에서 치의학 공부도 하고 일하다가 돌아와서 아버지 치과 그대로 물려받잖아. 아빠가 25년이나 치과 하셔서 단골손님도 많고 노하우도 알려주실 테고. 뭐, 자기도 공부 열심히 했겠지만."

"너 삶이 뭐 어때서? 너도 좋아."

"응? 아니.. 내 삶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친구 인생이 참 편하다는 거지."

"아, 꽃길 걷는 인생이라고?"

"응, 뭐 그런 거지. 난 내 인생에 불만 없어. 그래도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 뭐, 내일 죽어도 좋은 삶이었다고 할 것 같아."

"그래. 엄마는 지금이 좋아. 엄마 바람은 더 나빠지지 않는 거야."


 



엄마도 나도 더 원했던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참 만족하며 산다.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지금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서.

바깥이 아니라 안을 채우는 법을 알아서.

그래도 간절하게 더 원했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지금에 만족하는 법을 배웠던 건 아닐까?  


누가 보지 않아도 열심히 피우는 들장미처럼, 우리는 누가 보지 않아도 그저 조용히 한 발자국씩 걷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