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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진 Apr 14. 2023

삶이 흔들리는 순간 글을 쓴다

블로그가 나를 살렸다

무더운 날이었다

눈앞에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였지만

빨간 신호등은 나를 멈춰 세웠다.

그 잠시를 참지 못하고

나의 몸은 자연스럽게 그늘을 찾았다.



콘크리트 위로 쏟아지는 햇빛은 여전했지만

작은 그늘 안에서 나는 조금이나마 더위를 피했다.

빨간 불빛을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아, 이건 '글' 같은 거구나



인생에서 내 모든 것을 태워버릴 만큼 뙤약볕이 작열할 때

가만히 서 있으면 한순간에 재가 되어 사라져 버릴 거 같을 때

(혹은 그렇게 되는 게 차라리 나을 거 같을 때)



난 본능적으로 글을 썼다.

타 죽지 않기 위해서

이 뜨거운 절망의 순간을 버텨내기 위해서



손바닥만 한 그늘 아래에서 잠시 몸을 피하는 것처럼

글 안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다시 초록불이 들어오기만 기다렸다.



일정한 간격으로 돌아가는 신호등처럼

인생에도 주기적으로 빨간불이 들어온다.

다만 예상할 수 없는 순간에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모습으로 켜질 뿐.






그쯤에 난 일하던 곳에서 손가락을 다치고 부당해고를 당했다.

인간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상황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고 분노했고 절망했다.

모든 게 귀찮았고 의미 없어 보였으며 사람은 무서웠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것도 힘들었다.



병원과 집, 노동청과 심리상담,

나를 걱정해 찾아온 언니와 엄마 외에는

항상 문을 닫고 집 안에 있었다.



그 안에서 난 생전 안 하던 짓을 했다.

하루에 2시간씩 운동을 한 것이다.

살이 빠지고 건강해졌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분노와 절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내 안에 돌아와 나를 괴롭혔다.

잠들지 못하는 날들의 연속. 우울과 절망감과 불안감으로 가득했던 날들.



그런 나에게 언니가 말했다.



'너 블로그 한번 해봐. 글 쓰는 거 좋아하잖아'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말해준 언니 덕에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작은 단순했다.

오늘 간 음식점, 사 먹은 맥주 한 캔, 맛있는 라떼를 파는 카페

누구나 쓸 수 있는 글들을 그냥 썼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 삶이 점점 재밌어졌다.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는 사실이 기쁘고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내 돈 들이지 않고 좋은 곳에 가고 못해봤던 것들을 하고

그걸 글로 쓰고 계속해서 선순환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상상보다 더 즐겁고 신났다.


밖으로 나가는 게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설렜다.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

그 아무것도 아닌 행위가 나를 살렸다.







사람에겐 저마다의 그늘이 있다.

인생에서 빨간불이 켜졌을 때, 쉬어갈 그늘.



가만히 보면

내 그늘은 '글'이다.



매번

삶이 무너지는 순간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순간

나는 글을 썼다.



다시 일어날 힘을 살아갈 힘을 그 안에서 찾았다.




인생의 초록불은 자동이 아니라 수동이다.

한번 빨간불이 들어오면

그걸 초록불로 바꿀 수 있는 건 나뿐이다.



그늘 안에서 가만히 쉬고 있는 게 아니다.

그 안에서 삶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고 나아갈 힘을 찾고

그리하여 결국엔 내 손으로 신호를 바꾸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다.




삶이 흔들리는 순간 나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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