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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진 Apr 14. 2023

행복한 순간

돌아가고 싶다는 건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는 뜻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겠습니까?




살다 보면 때때로 이런 질문을 받는다. 사람들은 진지하게 혹은 장난 식으로 옛날로 돌아가면 삼성 주식을 살 거라고, 용돈을 모아서 땅을 살 거라고, 이 사람이랑은 결혼 안 했을 거라고 말한다.



나는 공상을 즐긴다. 하지만 저런 상상은 많이 하지 않았다. 즐기지 않았다고 할까. 즐길 수 없었다고 할까.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는 건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는 뜻이다



20대의 난 어떤 순간에도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말 힘든 순간이 닥쳐왔을 때도 돌아가고 싶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헤쳐나갈 자신이 없었기에 그저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을 뿐, 과거로 역행하고 싶지는 않았다.



30이 가까워졌을 무렵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아, 그때 내가 휴학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삶이 힘들어도 조금 더 공부를 계속했다면, 이렇게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을 텐데'



스물셋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3년 동안 아르바이트, 학교, 집만 오가면서 이틀에 한 번꼴로 밤을 새 가며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시나리오를 썼던 날.

너무도 열심이었지만 항상 부족해 보였고 더 노력하려 애썼던 지난날.



그 열정과 에너지와 청춘을 다시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은 에너지가 없다. 체력도 없다. 열정도 체력이 있어야 펼쳐나갈 수 있는 거다. 힘들면 그냥 자고 싶다...)







스물셋. 난 친구들과 함께 휴학을 했다.

그땐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는 게 가능할 줄 알았다.

조금만 쉬면 내 안에 열정과 에너지가 다시 채워질 거라고, 쉬었다가 돌아와도 예전처럼 아니 그전보다 더 좋은 글과 생각을 써 내려갈 거라 여겼다.



그런 안일한 마음으로 쉬고만 싶었던 어린 날의 나에게 돌아가 말해주고 싶다.



'지금 쉬면, 계속 쉬게 될 거야.'

'다시 제대로 글을 쓰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릴 거야'



귓가에 대고 때려 박아 주고 싶다.

절대로 멈추지 않게.

정신 차리고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펜을 놓지 않게



하지만 대부분의 날엔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없다

삶에 후회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을 거쳐서 지금의 내가 있고

지금의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남이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도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나를 사랑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해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안쓰럽게 여길 수 있을 거 같다

내가 나를 지킬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그리한다면

지금의 나는 사라지고

내가 쓸 수 있는 글도 사라질 것이다

아마 나는 글 같은 건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쓸 수 있는 단어, 감정, 마음들

그것들을 가졌으니까

나는 지금 이대로의 내가 좋다



그 모든 것들을 헤치고 살아남은 나

절망과 우울에서 희망의 순간까지 걸어온 나

때때로 넘어지고 주저앉는 나를 일으켜줄 사람을 만난 나

그리하여 어느 순간, 힘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한 나



나는 그냥 지금의 내가 좋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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