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주차 - 사람 앞에서 굳어버린 나
"할까 말까 할 때는 해라. 만날까 말까 할 때는 만나라. 읽을까 말까 할 때는 읽어라"
하라는 대로 한 것은 좋았는데 너무 대책이 없었다.
『당신에게도 낭만이 필요합니다』라는 2020년 6월 출간 에세이를 읽었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북카페&서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출간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카페 운영은 나의 '마지막 꿈'이다. 마지막 직업으로 삼고 싶은 업종이 카페였기에 나는 주저 없이 책을 읽었다.
잠깐 간략하게 이 책을 소개하자면,
카페에 대한 환상만이 아닌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짚어줬고, 북카페&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은 이상만 가지고 하기 힘든 일이라는 것도 알려줬다.
대형 서점이 아닌 만큼 책 공급의 어려움부터 재고 문제, 카페의 수익성, 서점과 도서관의 애매모호한 경계 등.
이상만이 아닌 현실적인 문제를 공유해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신과 기준을 가지고 운영해나가는 사장님이자 작가님이 더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책 중후반부에 이런 글을 보게 된다.
"할까 말까 할 때는 해라. 만날까 말까 할 때는 만나라. 읽을까 말까 할 때는 읽어라"
만날까 말까 할 때는 만나라...?
내가 있는 곳과 그다지 멀지 않은 수원에 북카페&서점 <헤세처럼>을 운영하고 계시니 찾아가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무슨 용기인지 몰라도 <헤세처럼>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1시간쯤 걸려서 도착한 그곳. 다행히 평일이었고, 오픈 시간이라 손님은 한 분 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카페 가는 것이었고, 서점가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긴장되었던 적이 있었던가.
나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문을 열고 들어가 아주 자연스럽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했다. 곧 주문한 커피가 나왔고 호흡을 고른 뒤 작가님께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당신에게도 낭만이 필요합니다』 책 읽고 뵙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사인 한 번 해주세요..."
어릴 적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어느 누구에게도 받아본 적도 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 사인 요청을 하다니.. 왠지 모를 민망함과 긴장감이 솟구쳐 올라왔다. 심지어 당황해서 뒤에 뭐라 뭐라 한 것 같은데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작가님은 나에게 감사를 표현해주셨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진까지 찍어주셨다.
그런데 문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대화를 시도해봐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작가님이 몇 가지 질문을 해주셔서 그에 대한 짧은 답을 했고, 잠깐의 시간이 주어졌던 대화는 뚝 뚝 끊겼다. 나의 '대책 없음'에 괜히 온 것은 아닐까 하는 후회와 걱정을 하던 차에, 작가님께서 눈치를 채셨는지 카페를 둘러보라고 하셨다. 다행스럽게도 이곳은 '북카페&서점'이었기 때문에, 책 구경도 가능하고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다는 크나큰 장점이 있었다.
약 1시간 반 정도 머물면서 작가님과 잠깐잠깐 대화를 더 나누었고, 책도 읽다가 북카페에서 나왔다. 나오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우습지만 우선은 나 자신을 칭찬했다. 누구를 찾아가 인사를 하고 사인을 요청한 것에 대한.
새로운 만남을 어려워하던 나에게는 신선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후회와 반성을 했다. 정말 아무 대책 없이 그냥 만날까 해서 만난 것에 대한.
같은 사람일 뿐인데 사람 앞에서 완전히 굳어버리다니..
'만나 뵙고 무슨 말을 할까, 질문 몇 가지를 미리 생각하고 가서 여쭤볼걸'하는 아쉬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을.
'다음에 이런 기회가 있으면 꼭 미리 준비해야지. 긴장은 하되 당황은 하지 않게 이미지 트레이닝 연습을 해놔야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날이었다.
당시는 굉장히 민망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피식 웃음이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