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화장실에는 화장지가 없다
그럴 리가!
설마....
정말이다.
여행짐을 꾸릴 때, 그래서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를 넣느라 별미인 동시에 비상식량인 컵라면을 뺐다. 아니 넣었던 컵라면을 몇 개 덜어내느라 가슴을 쥐어짜며 결단을 내려야 했다. 도대체 쿠바는 어떤 나라이며 얼마나 개발도상국이기에 공중 화장실에 화장지가 없을까?
미지의 나라 쿠바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졌다.
스페인 여왕의 지원을 받은 콜럼버스가 인도로 가는 새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항해하던 중 너무나 아름다운 섬을 발견한다. 그리고는 지체 없이(원주민의 허락도 없이 감히) 그 섬을 스페인 여왕에게 선물한다(남의 소유 땅을 지 맘대로 선물하다니, 도둑 아니면 강도일세!). 그 섬이 바로 카리브해의 흑진주, 쿠바였다.
설탕의 생산지이며, 시거의 나라 쿠바는 그때부터 '쿠바'라는 이름으로 불려졌고, 스페인으로부터 400여 년에 이르는 기나긴 식민통치를 받게 된다. 스페인의 귀족들이 아름다운 쿠바로 몰려들어왔고, 그들의 편리를 위해 수많은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로 잡혀 들어온, 한 마디로 억장 무너지게 슬픈 섬이 쿠바다.
사유재산을 허락하고 외부 문물을 수용하는 쿠바는 1당 체제의 공산주의 국가다. 쿠바혁명을 일으킨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에 의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지만 곧 미국에 밉보이게 되고, 이로 인해 미국과 주위 국가들로부터 금수조치를 당하게 된다. 산업기반이 취약한 쿠바는 소련에 도움을 요청하나 소련이 붕괴되면서 기나긴 경제적 빈곤 상태에 들어간다. 쿠바에 여전히 50년 된 골동품 자동차(우리가 알고 있는 멋진 클래식 카)가 굴러다니고, 화장실에 그 흔한 화장지가 없는 이유다.
2014년에 미국과 재수교하지만 오랜 단교로 인한 높은 실업률과 문맹률, 의료시설의 부족 등으로 국민들의 생활여건은 그리 좋지 못하다. 미국인의 쿠바 입국조건은 꽤 까다로운 편이다. 캐나다에서도 노란색의 여행 고위험국가로 분류하여 쿠바 입국 시 별도의 신고를 권장할 만큼 특별한 주의를 요하고 있다.
이상한 포인트에서 도전 자극을 받는 나에게, 쿠바는 여러 면으로 여행하기 딱 좋은 나라였다. 그런데 화장실에 화장지가 없단다. 화장실 휴지는 부피도 크고 또, 대체 몇 개의 두루마리가 필요할지 가늠이 어려운 관계로 기내가방만 들고 가려는 나의 의지가 살짝 흔들리긴 했다. 다행인 것은 더운 나라였기 때문에 두꺼운 겨울 옷이 필요 없다는 것, 얇은 여름옷 한 벌을 이틀 씩 입기로 하고 옷을 반으로 줄였다. 눈물을 삼키며 컵라면까지 빼고 나니 기내가방이 가능해졌다.
쿠바 바라데로 국제공항밤늦게 도착한 바라데로 공항,
화장실에 정말 화장지가 없음을 눈으로 확인했다. 아, 사실이구나!
쿠바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 시골 기차역 대합실 수준이라는 것보다, 화장지 없는 화장실이 내게는 더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꾹꾹 눌러 담아 온 두루마리 휴지가 두 개나 있단다, 흐흐흐.
갑자기 두루마리가 더없이 소중해 보였고 동시에, 아껴 쓰자!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일주일 동안 묵었던 하바나 5성급 호텔 로비 화장실에 휴지가 채워진 날은 첫날 딱 하루였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호텔 나씨오날레 로비 화장실에는 휴지가 있더구먼!)
맛집으로 알려진 레스토랑 화장실에도 휴지는 없었다. 외출할 때는 반드시, 꼭! 두루마리 휴지를 가방에 챙겼다. 공항 화장실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유료였으며, 그럼에도 휴지는 없었다.
결국, 전혀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쿠바 화장실에는 화장지가 없다는 것을.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나 쿠바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치다 화장실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지금, 두루마리 화장지를 머리에 이고 갈지언정 쿠바는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라고 애써 다독이고 있는 것이다. 다음 쿠바 여행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두루마리가 몇 개 필요한 지는 대충 계산이 나온다. 일주일에 2개면 충분하다고. 컵라면은 다 빼도 괜찮다고.
- 지난 크리스마스에 다녀오고, 그리운 마음에 맥락 없이 끄적여봤습니다.
- 아래 링크는 쿠바 여행에 필요한 내용들을 모아 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