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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Dec 16. 2024

술은 안 먹지만 해장은 하고 싶어!

속풀이 배추 해장국

오늘 체감온도는 영하 9도였다.

위아래 내복을 챙겨 입고, 두터운 방한모에 장갑을 하고 산책을 다녀온다. 걷다 보면 추운 느낌은 사라지고 몸속도 훈훈해진다.


추위를 혹독하게 체감했던 적이 있는데, 우습게도 더운 피가 흐른다는 혈기 왕성한 이십 대 시절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소공동에 있는 어느 회사에 경리직원으로 일을 했었다. 직원들끼리 고깃집에서 밥을 먹고, 아마 2차로 이어졌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술을 못 마셨다. 마시면 빨개지고, 가슴이 울렁거리고, 결국 토하고 말았다. 그래도 회식이니 빠지면 안 되고, 술 마시는 분위기는 좋아해서 함께 하는 편인데, 그날은 못하는 술 좀 한 번 배워보겠다고(아니면 기분 때문에) 한두 잔 받아 마셨나 보다.


취한 것도 아니면서 안 취한 것도 아닌 어설픈 정신 상태에, 칼바람은 옷 속을 파고 들고, 몸은 막무가내로 덜덜덜 떨려왔다. 턱까지 흔들어대며 떨리는 발걸음으로 겨우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 소공동 롯데 백화점에서 시청역까지의 거리가 왜 그렇게 멀던지.

술이 들어가면 안 춥다고 해서, 그래? 그럼 어디, 하며 마셨는데, 술을 충분히 마시지 않아서 그런가? 더 마셔야 했나?


그 밤의 추위가 하도 굉장한 것이어서 그 뒤로 겨울에는 술 옆에 가지도 않지만, 해장은 다른 영역이다. 살다 보면 속을 풀고 싶을 때가 자주 있는데, 술을 마셔도 정작 속이 풀리지 않거나, 술 없이 속을 풀어야 하는 때, 술은 안 먹고 안전하게 속만 풀고 싶을 때, 술을 못 먹는 내가 술 마시는 기분을 내고 싶을 때, 정말로 뭔가 얹혀서 속이 그득하고 답답할 때, 그럴 때 나는 시원한 해장국 한 그릇이 생각난다.


펄펄 끓었던 젊음은 식고, 미지근한 몸에 두꺼운 옷을 입혀 근근이 지내는 지금 같은 추운 겨울에는 당연히 따끈한 해장국이 반드시 필요하다. 몸을 녹이기 위해 해장국을 먹다 보면 어느새 차가웠던 마음까지 흐늘거리며 따스해지니, 몸과 마음이 추운 날엔 차라리 해장국이 어설픈 음주보다 나은 듯하다.


펄펄 끓는 배추 해장국


그렇다면 달아난 입맛도 돌아온 참에 어디 배추 해장국 한 번 만들어본다.


어제 사둔 소고기 사태를 찬 물에 넣고 끓이는 동안, 씻어둔 배추와 무를 썰고 숙주를 한데 섞은 후, 여기에 된장, 국간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참기름을 넣고, 완전히 익은 사태를 건져내어 썬 다음 다 같이 김치 버무리듯 버무리고 20분 정도 실온에 둔다. 이것을 끓고 있는 육수에 붓고 굵은소금으로 간하면, 먹음직한 배추 해장국 완성이다. 


참치 샌드위치보다 더 간단한 해장국 만들기는 실패할 확률도 없다. 


안 그래도 국밥 스타일에 국물파인 지라 AAA 스테이크보다 뜨끈한 해장국을 더 자주 먹는다. 해서 이런저런 해장국을 끓이다 보니 나름 해장국 전문가가 되었다.


해장국은 끓이기도 쉽지만 먹는 것은 더 간단하다.

오늘 저녁은 다른 반찬 필요 없고, 그저 국물에 밥 말아서 땀 뻘뻘 흘리며 한 그릇 뚝딱! 먹어보자. 훌훌 먹다 보면 고구마 먹은 듯 답답했던 속도 부드럽게 풀어질 터이니, 이참 저 참 해장국은 내게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음식이다. 한 솥 끓여놓고, 모두모두 불러 모아 한 그릇씩 나누고 싶다.


추운 날 해장국 한 그릇,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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