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유시간을 즐길 수 있고 손자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같이 살던 딸네가 이사를 나간 후로 나는 출퇴근하는 육아도우미가 되었다. 한 집에서 손자들과 하루종일 지내던 때와 달리 아침에도 저녁에도 아이들이 곁에 없는,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부산스럽지 않은 아침과 소박한 저녁시간이 내게는 산소만큼 소중하다.
주말에는 남편과 단출하게 둘만의 저녁을 먹을 수 있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산책도 즐길 수 있다. 오래 산 부부답게 별로 말이 없는 우리는 각자 자기 할 일을 찾아 치우고 닦고 고치고 다듬다가 밥 먹을 때만 마주 앉는다. 조용하다.
월요일이 되어 딸네 집으로 출근했다.
딸네 집은 언제나 아수라장이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아침 먹은 그릇들을 치우고, 10개월 된 작은놈을 딸에게서 넘겨받는다. 손자는 할머니가 이제 낯이 익은 지 제법 얼굴을 알아보고 코에 주름을 잡아가며 활짝 웃는다. 나와 남편도 손자를 보고 활짝 웃었다. 스물네 시간 만에 웃어본다.
손자 놈 손아귀에서 풀려난 딸은 밀린 이삿짐을 풀고 서류를 정리하느라 바쁘다.
낮잠 잘 시간이 되어 칭얼거리는 손자를 데려다가 모유 수유를 하고 재운다.
남편은 쓰레기와 재활용을 정리하고, 짐을 풀고 나온 빈 박스들을 치워놓는다. 군데군데 청소기도 밀어준다.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난 손자랑 딸과 함께 넷이서 점심을 먹고 나면, 남편은 곧 낮잠을 청하고 나는 설거지를 끝낸 후 다시 딸에게서 손자를 건네받는다.
정리를 마친 딸이 손자를 데려가고, 나는 저녁메뉴를 정하기 위해 냉장고를 열고 찬거리를 살핀다. 딸을 보며, 오늘 저녁 뭐 먹니? 하고 묻지만 대답은 뻔하다.
'몰라....'
저녁 다섯 시가 되면 퇴근한 사위가 어린이집을 마친 큰 손자와 함께 들어온다. 큰 손자는 이제 제법 커서 손도 혼자서 씻고, 양말도 혼자 벗는다. 오자마자 보트를 만들었다며 우유갑으로 만든 보트를 들고 할아버지에게 달려간다.
‘우와~ 이걸 만들었어~ 어디 봐, 슝슝슝~’
남편이 큰 목소리를 내며 과하게 칭찬하고, 나도 입술에 침을 바르며 질 세라 거든다.
'멋지네~ 잘해쪄요~ 힝힝~'
말도 안 하고 조용했던 집에서와는 딴판이 되어 귀여운 목소리까지 내며 야단법석을 떨어댄다.
곧바로 몸을 돌려, 배고픈 사위를 위해 얼른 저녁밥상을 차린다. 양념한 고기를 볶고, 물김치를 꺼내고, 된장찌개와 가지무침, 깻잎김치... 있는 대로 모두 꺼내놓으면, 잘 먹겠습니다~ 사위가 뚝딱 한 그릇을 비운다. 여섯 식구가 둘러앉아 먹이고 먹으며 맛있게 하루를 마감한다. 딸네 집은 펄떡거리며 살아 숨 쉬는 삶의 현장 같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6시 반쯤 딸네 집에서 퇴근한다.
'엄마 고마워~'
'감사합니다~'
출퇴근 육아도우미가 되고 나니 아침과 저녁, 그리고 주말에는 내 자유시간을 즐길 수 있고, 평일에는 손자를 보는 즐거움이 있다. 손자들의 고갱이 같은 손과 발이 내 하루의 활력소가 되었다.
출퇴근 육아도우미, 생각보다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