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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Feb 25. 2024

순례길보다 어려운 육아의 길

아이 셋을 키운 나도 육아는 여전히 어렵다.

4개월이 지나야 만 네 살이 되는 손자는 벌써부터 'No!'를 입에 달고 다닌다.

'이리 와~ 신발 신자~'

'No!'

'어린이집 늦어, 얼른 와'

'No!'

'혼자 신을 수 있어?'

'No!'

'할머니가 도와줄까?'

'NOooo!'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그림책을 바닥에 던지고, 쿵쿵 뛰어다녀서 막 잠든 동생을 깨우는가 하면, 하부지 가라며 할아버지에게 고함을 지른다. 이른바 미운 네 살 시작이다. 말 안 듣고 제 멋대로이며 버릇없는 아이들은 딱 질색인데, 내 손자가 그런 아이라니 대책이 서질 않는다.  


제 엄마는 야단을 치거나 화를 내다가 그냥 넘어가기도 해서 일관성이 없고, 제 아빠는 대화로 풀어가려는 듯 전혀 화를 내지 않는다. 이쯤에서 나의 고민이 시작된다. 손자육아를 돕는 할미로서 예뻐만 해 줄 것인가, 아니면 기강 잡는 호랭이 할멈이 될 것인가? 




손자는 책임질 일 없으니 예뻐만 해 주라는 것이 널리 통용되는 썰이긴 하지만, 예뻐하는 것에도 책임이 따를 텐데, 교육은 제 부모에게 맡기고 남의 애 보듯 모른 척하는 것이 내게는 무책임해 보인다. 그렇다고 제 엄마 아빠보다 앞서 아이 야단을 치면 뭔가 불화가 생길 것 같고, 아~ 어렵다 어려워! 내 자식이라면 엄격히 훈계도 하고 타일러서, 버릇을 확실하게 가르치련만(솔직히 그렇게 하지도 못했지만) 속으로만 끙끙 앓아야 하는 황혼육아의 답답함이여!


아이들 교육의 관점에서 엄마의 역할은 하면서도 모르겠고, 하고 나면 알 것 같아도 막상 닥치면 다시 혼란스러워진다. 육아가 어려운 이유다. 할미의 역할은 그에 비해 쉬울 줄 알았는데, 제 부모의 반응에 따라 내 교육철학까지 더하고 빼며 손자를 봐야 하니 이 또한 쉽지 않다.  


손자를 야단치면 딸과 사위까지 나를 미워할 것 같고, 그냥 두고 예뻐만 하자니 어린애에게 두드려 맞을 것 같고, 제 엄마 아빠에게 손자 녀석 혼 좀 내줘라 하면 할미의 권위가 떨어질 것 같고.... 관계를 망치지 않으면서 교육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어디 없을까? 다시금 학교 선생님들이 존경스럽다. 특히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교사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신의 영역이다. 


고약한 미운 네 살 빨리 지나가고, 얼른 커서 말귀 알아듣는 나이가 되면 좋으련만. 그럼 나도 대화로 풀어가는 세련된 할미 노릇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육아는, 애를 셋이나 키운 내게도 여전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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