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100미터 경주가 아니야
어느 날 아침, 큰 손자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 후 칭얼거리는 둘째를 재우러 들어간 딸이 한참을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 평소에는 아이 재우고 나서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던 딸인데... 피곤해서 같이 잠이 들었나 생각하고 내 하던 일에 집중했다.
잠시 후, 딸이 어두운 표정으로 방에서 나온다. 왜? 하고 물으니,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어..... 뛰기도 싫고... 샤워도 하기 싫어.....'
계속되는 수면부족과 누적된 피로 때문에 오는 귀찮음, 우울감, 그러니까 말하자면 육아로 인해 번아웃이 온 모양이다.
나는, 내가 와서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청소도 하며 아이들도 봐주는데 아직도 그렇게 힘이 드나 싶은 마음도 있고, 내가 있으니 긴장이 풀어지면서 손도 까딱하기 싫은 무기력함이 잠깐 오는 건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애기가 아직 어리니까 내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애들이 나한테만 붙어있으니까 물건정리도 못하고, 이삿짐도 못 싸고, 저녁에는 애들 재우고 나면 나도 쉬고 싶고...'
그 느낌! 나도 알지. 아기한테 손발 다 묶인 듯한 그 느낌, 내 몸이지만 내 몸 아닌 답답함.
'애기 재우면서 누워서 인스타 봤는데, 나보다 몇 년 후배였던 아이들이 벌써 자기 사무실도 내고..... 동기들 중에서는 이제 강의하는 애들도 있고..... 이렇게 애만 보고 있으니까 나만 자꾸 뒤처지는 것 같애. 그런 거 보고 나니까 더 우울해져.'라며 딸이 기운 없이 말을 이어갔다.
딸은 두 번의 출산으로 육아휴직을 두 번 했다. 물론 아이들은 예쁘지만, 2년의 시간 동안 일을 단절하고 집에서 육아만 해야 했으니 혼자서 얼마나 답답하고 조바심이 났을까!
어미로서 아이에게 쏟아야 하는 시간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조금 늦는다고 해도 어느 나이에 도달하면 모두가 마찬가지이니 너무 안달하지 마라, 옛날 너희들이 어렸을 때 우리 집이 망해서 얼마나 절망적이었는 줄 아니, 그런 거 생각하면 지금 네 주변 조건에 감사함을 가져야 한다, 까지 둘러둘러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기분이 조금 나아진 딸은, 식구들과 떨어져 혼자 대학 다닐 때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고 웃기도 하며 무거웠던 얼굴을 조금씩 폈다. 내 딸이 그랬구나, 저 혼자서 힘들었구나, 이제와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생한 딸에게 엄마로서 늦은 위로를 하고 딸의 마음을 다독였다. 모녀간의 대화는 한참 동안 이어졌고, 그 사이 손자도 잘 잤는지 방에서 나오며 방긋방긋 웃었다.
한창 일할 젊은 나이에 집에서 육아만 하며 지내는 초보 엄마들은 아무래도 경력단절에 대한 심리적 위축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쩌랴, 아이에게 엄마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신과 같은 존재이며, 태어나 처음 갖는 관계 맺음의 시작이다. 육아란 단순히 아이를 먹이고 재우는 사육이 아니라, 신을 대신해 우주를 창조하는 거룩한 업무인 것이다. 일을 조금 더 빨리 하는 것, 남보다 승진을 먼저 하는 것 따위의 차원과는 다르다.
딸도 물론 이 점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남들은 걷거나 뛰어가는데 저 혼자만 제자리걸음 하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에 가끔씩 저렇게 제 속을 끓인다.
인생은 단숨에 먼저 도착해야 하는 100미터 경주가 아니라 완주를 향한 길고 긴 마라톤이다. 육아를 끝내고 그 시간을 지나온 나는 초보엄마의 엄마로서, 딸의 답답함을 들어주고 내가 겪고 아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