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랜턴 Feb 22. 2024

딸기는 목구멍을 타고 내려와

나는 감자탕을 만들고 딸은 이유식을 만든다.

차려준 밥도 앉아서 먹기 힘들다는 신생아 육아(9개월은 신생아도 아니지만)를 하며, 게다가 모유 수유를 하고 있는 딸을 생각하면 메뉴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김치찌개, 된장찌개, 고등어구이, 해장국, 김밥, 불고기, 갈비찜, 미역국, 참치 샌드위치, 비빔밥, 잔치국수, 소 등심구이... 끼니마다 오이지무침, 마늘종 볶음, 장조림 등 새로운 밑반찬까지 해댔는데, 이젠 딱히 생각나는 메뉴도 없다. 반찬 몇 가지씩 만드는 것도 일이니 오늘은 잔머리 좀 써서 김치만 있으면 되는 감자탕으로 정한다.


-오늘은 감자탕이다~

'와~ 맛있겠다.' 딸이 함성을 지른다.


첫아이 낳고 체질이 바뀌어버린 딸은 계란과 콩에 알레르기가 생겼다. 된장, 간장, 두부처럼 콩으로 만든 것과 계란이 들어간 가공식품, 마요네즈 등을 먹으면 피부가 온통 가렵고 물집이 생기는 이상 체질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난생처음 된장과 국간장을 뺀 감자탕 만들기 도전이다.



된장과 국간장을 넣지 않은 감자탕 만들기


대단할 것 같지만 그냥 핏물 뺀 돼지등뼈를 찬물에 넣고 끓이다가 국간장 대신 굵은소금으로 간하고, 쌀뜨물 조금 섞고, 시래기 넣고, 감자 넣고, 대파 넣고, 간 마늘은 당연하고, 참치 액젓으로 맛을 낸 후 들깨가루를 넣으면 끝이다. 아! 고춧가루도 팍팍.





내가 딸에게 먹일 감자탕을 만드는 사이, 딸은 제 자식 먹일 이유식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섬유소까지 골고루 질 좋은 것으로 준비한다.


새우전, 시금치나물, 아보카도, 치즈볼, 밥. 

큰 손자 놈 저녁 식사 메뉴다. 

작은놈은 이유식 초기 단계라 삶은 계란에 부드러운 딸기, 그리고 삶은 렌틸콩에 바나나를 으깨서 만든 퓌레다. 이유식 만들기, 정말 손이 많이 간다. 먹이는 방법도 아이가 직접 골라먹는 자기 주도 이유식이라나. 우리 세대에는 없던 딕션이다. 


나는 내 새끼 밥을 챙기고 딸은 제 새끼 이유식을 챙기고, 그렇게 3대가 모여 저녁 식사를 한다. 감자탕이 끓는 내내 '된장 없이 맛있게 될까?' 하며 기대와 동시에 영 못 미더워했던 딸이 

'나 더 먹을래.' 하며 두 그릇을 먹는다.

'엄마가 오고 나서부터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 먹어.' 

아무렴! 그러려고 내가 왔단다. 딸의 칭찬에 내 엉덩이가 실룩거렸다.

 

감자탕을 두 그릇째 국물까지 맛있게 먹은 딸이 설거지하고 있는 내게 다가오더니 딸기 하나 내 입에 쏙 넣어준다.

'딸기 맛있지, 엄마!'


나는 내 딸, 딸은 지 새끼, 내리사랑인 줄로만 알았는데 엄마에게 딸기를 먹여주는 딸의 마음이 내 목구멍을 타고 내려와 팔다리에 좍 퍼져나가고 내 가슴에 콕 들어와 박혔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생문이 열리던 날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