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자탕을 만들고 딸은 이유식을 만든다.
차려준 밥도 앉아서 먹기 힘들다는 신생아 육아(9개월이 신생아인지는 모르지만)를 하며, 게다가 모유 수유를 하고 있는 딸을 생각하면 메뉴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김치찌개, 된장찌개, 고등어구이, 해장국, 김밥, 불고기, 갈비찜, 미역국, 참치 샌드위치, 비빔밥, 잔치국수, 소 등심구이... 끼니마다 오이지무침, 마늘종 볶음, 장조림 등 새로운 밑반찬까지 해댔는데, 이젠 딱히 생각나는 메뉴도 없다. 반찬 몇 가지씩 만드는 것도 일이니 오늘은 잔머리 좀 써서 김치만 있으면 되는 감자탕으로 정한다.
'오늘은 감자탕이다~'
'와~ 맛있겠다.' 딸이 함성을 지른다.
첫아이 낳고 체질이 바뀌어버린 딸은 계란과 콩에 알레르기가 생겼다. 된장, 간장, 두부 등 콩으로 만든 것과 계란, 마요네즈 등을 먹으면 피부가 온통 가렵고 물집이 생기는 이상 체질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난생처음 된장과 국간장을 뺀 감자탕 만들기 도전이다.
된장과 국간장을 넣지 않은 감자탕 만들기
대단할 것 같지만 그냥 핏물 뺀 돼지등뼈를 찬물에 넣고 끓이다가 국간장 대신 굵은소금으로 간하고, 쌀뜨물 조금 섞고, 시래기 넣고, 감자 넣고, 대파 넣고, 간 마늘은 당연하고, 참치 액젓으로 맛을 낸 후 들깨가루를 넣으면 끝이다. 아! 고춧가루도 팍팍.
내가 딸에게 먹일 감자탕을 만드는 사이, 딸은 제 자식 먹일 이유식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영양을 분석하며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섬유소까지 골고루 질 좋은 것으로 준비한다.
새우전, 시금치나물, 아보카도, 치즈볼, 밥. 큰 손자 놈 저녁 식사 메뉴다.
이유식 초기 단계인 작은 손자에게는 삶은 계란에 부드러운 딸기, 그리고 삶은 렌틸콩에 바나나를 으깨서 만든 퓌레를 줄 작정이다. 이유식 만들기, 정말 손이 많이 간다. 먹이는 방법도 아이가 직접 골라먹는 자기 주도 이유식이란다. 우리 세대에는 없던 딕션이다.
나는 내 새끼 밥을 챙기고 딸은 제 새끼 이유식을 챙기고, 그렇게 3대가 모여 저녁 식사를 한다.
감자탕이 끓는 내내 '된장 없이 맛있게 될까?' 하며 영 못 미더워했던 딸이 '나 더 먹을래!' 하며 두 그릇을 먹는다.
'엄마가 오고 나서부터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 먹어.'
아무렴! 그러려고 내가 왔지. 딸의 칭찬에 나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감자탕을 두 그릇째 국물까지 맛있게 먹은 딸이 설거지하고 있는 내게 다가오더니 딸기 하나 내 입에 쏙 넣어준다.
'딸기 맛있지, 엄마!'
나는 내 자식으로, 딸은 제 자식으로 이어지는 내리사랑으로만 생각했는데...
엄마에게 딸기를 먹여주는 딸의 마음이 내 목구멍을 타고 내려와 팔다리에 좍 퍼져나가고 내 가슴에 쏘옥 들어와 박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