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며느리가 아프다.
목이 따끔거리고 추우며, 몸살기가 있단다.
시집온 지 1년 4개월 만에 처음이다.
나는 시어머니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열기가 많아 겨울에도 더워하는 아들만 생각하느라 며느리가 추운 줄 몰랐다. 온풍기라도 사줄걸.
안쓰러운 마음에 내일은 일요일이니 늦게까지 자라며 핫팩을 챙겨주었다.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으로 멀리 시집간 딸이 아프다고 하면 친정 엄마는 얼마나 속상할까? 몸이 아프면, 딸도 엄마가 더 생각나겠지.
일요일 아침 10시, 며느리는 아파서 아침밥도 못 먹고 누워있다. 이마라도 짚어주고 싶은데 혹여 불편해할까 마음만 들썩인다. 아들이 방에서 나와 물 한 컵과 사과 한 알을 까서 도로 들어가고, 나는 찹쌀을 불려 죽을 끓이기 시작한다. 무엇을 넣어야 맛도 있고 영양도 좋을까... 곰곰 생각하다가 냉동새우와 계란을 떠올린다.
딸이 아플 때 나는 곧잘 흰 쌀을 넣고 계란죽을 끓여주곤 했다. 결혼 후 두 아이 엄마가 된 딸은 아팠을 때 먹었던 죽이야기를 가끔 한다. 별거 아닌데 맛있었다고.
아플 땐 입맛을 잃기 쉽다. 이럴 때는 작은 한 끼도 큰 위안이 된다. 며느리는 나와 식성이 다르긴 하지만, 어쩌랴, 친정 엄마의 음식을 공수해 올 수 없으니 그냥 내 방식대로 정성껏 죽을 끓인다. 그녀 입맛에 잘 맞았으면 좋겠다.
죽이 다 되어갈 즈음 며느리가 후디를 머리까지 쓰고 기운 없이 방에서 나왔다. 하룻밤 사이 그녀의 얼굴은 마른 잎처럼 꺼풀 하다. 얼른 뜨거운 죽 한 그릇 떠서 소금으로 간해주고 먹으라 했다. 다행히 순하게 잘 먹는다.
당뇨가 있는 시아버지 몰래 나만 먹으라며 쵸코과자를 건네주던 며느리다.
아는 사람이라곤 오로지 제 남편 밖에 없는 이곳으로 혈혈단신 시집온 며느리다.
제 남편이 당연히 사랑해 주겠지만, 남편 사랑과 시어머니의 사랑은 다르다.
그녀를 보면, 낯선 시댁에 들어가 그 집 식구들에게 맞추면서 사느라 어색하고 불편했던 신혼 시절의 내 모습이 자꾸만 생각난다.
한 그릇의 죽이 며느리의 목 통증을 가라앉히고 추웠던 그녀의 몸을 따스하게 덥혀주기를 바란다. 혹여 신혼 때의 나처럼 불편한 마음이라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