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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디 커플의 탄생

공포의 첫 만남

by 블루랜턴

딸이 온라인으로 남자를 만난다는 사실은 여자 쪽 부모에게도 날벼락같은 것이었다.


곱게 키운 딸이 인터넷 게임이나 하면서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니, 땅이 꺼지는 듯한 실망과 딸을 도둑맞은 심정으로 부모는 거의 기절할 정도였다. 아빠는 노발대발해서 '이 자식, 오기만 해 봐!'라며 으르렁댔고, 엄마는 딸이 너무 기막혀서 그녀와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여자는 그들 부부의 세 자녀 중 첫째였으며, 졸업을 1년 앞둔 대학생이었다. 믿었던 딸이었기에 그들이 받은 충격은 배신감과 동급이었다.


그리고 D-데이,

미국으로 간 아들이 드디어 여자의 부모를 대면하는 날이다.


아들은 심장이 튀어나올 만큼 떨리고 겁이 났지만 진심을 다해서 그녀의 아빠를 대했다고 한다. 살얼음을 깨트리지 않기 위해 온몸의 무게를 들이마시며 발 하나를 옮기듯,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온갖 심혈을 기울였을 게 뻔했다.


자신들의 만남이 시시껄렁한 온라인 게임에서 시작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사랑이 결코 가볍거나 시시한 감정이 아님을 부모에게 납득시키기란, 백 개의 퀘스트를 단숨에 해결하고 레벨 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관문이다. 더구나 아들은 그들 부부에게 괘씸한 딸 도둑놈이 아닌가!


나는, 아들이 혹시 그들 부모에게 붙잡혀 어두운 지하에서 린치를 당할까 두려웠고,

여자의 부모는, 딸이 듣보잡 양아치 같은 놈에 빠져서 앞 날을 망칠까 두려웠다.

남자와 여자는, 부모의 실망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고, 그들의 불같은 분노와 거센 반대를 자신들이 이겨내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남자의 가족은 오래전에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 왔고, 여자의 가족도 오래전에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가정이라는 것만 양쪽 집이 서로 알고 있을 뿐 도대체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며,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사는지 몰랐으니 그날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1990년도에 미국여행을 하고 온 지인이, 미국은 마약과 마피아, 갱단이 우글거리는 위험한 나라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들의 미국 숙소 주소와 여자의 집 주소 및 휴대폰 번호 등을 넘겨받고, 매일 아침저녁 반드시 안부 전화할 것을 약속하고 아들을 보냈지만, 내 머릿속 한쪽 구석에서는 험악한 멕시코 갱단의 얼굴이 연이어 어른거렸다. 시커먼 코밑수염을 기른 여자의 아빠와 떡대 같은 남자 두어 명이 아들을 잡아다가 가두는 끔찍한 장면이 그려질 때마다 강하게 도리질을 하며 털어냈다. 미국은 총기소지가 합법인 나라였으니 하루 종일 온 신경이 미국을 향해 곤두서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동행을 거부하고 혼자 떠난 아들이 무사히 살아 돌아오기만을 빌어야 했다.




그날 저녁, 공포의 첫 만남이 무사히 끝이 났다.


처음 가진 대면에서 나의 아들이 자신의 딸만큼 순수하고 다정한 남자라는 것을 그 아빠는 알았나 보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녀의 아빠에게 시커먼 수염 따윈 없었으며, 떡대 같은 두어 명은커녕 달랑 혼자 나왔다고 한다. 그는 따뜻하고 자상한 아빠였다. 얼마나 자신이 딸을 사랑하고 신뢰하는지에 대해 아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고, 아들도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여자의 엄마는 여전히 딸에게 냉랭했으므로 아들은 그녀의 아빠만 보고 돌아와야 했다. 아들이 납치당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고 몰매를 맞지 않아 다행이었을 뿐, 그 엄마는 천천히 만나도 되었다.


무사하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갔다. 사법 고시 합격 소식이라도 전하는 듯 아들의 목소리는 밝고 경쾌하고 우렁찼다.


3개월쯤 지나서 아들은 다시 미국으로 갔다. 이번엔 그녀의 엄마와 동생들, 친척들에게도 인사했으며, 그 집에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얼음같이 차가웠던 그녀의 엄마도 서서히 풀어졌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은 누구보다 아들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 마음을 열게 하는 기술은 아무래도 진심만 한 것이 없는 듯하다.


그녀의 가족과 친지 중에서 처음부터 아들에게 호감을 갖고 도움을 준 사람은 오로지 그녀의 외할머니였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둘이 결혼시켜!'라고 했다는데, 평소 신망 있는 집안 어른의 말씀 한 자락이 당시 아들에게는 천군만마와 같았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나는 훗날 결혼식장에서 그녀의 외할머니를 힘껏 안아줬다. 이 분 혹시 영험 있는 분 아닐까 쓸데없는 추측까지 할 만큼 고마울 뿐이었다.


아들은 2, 3개월마다 미국으로 가서 여자를 만났고, 그녀의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학교를 졸업한 여자도 캐나다에 와서 우리 가족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밝고 명랑하면서 차분했다. 나도 사랑스러운 이 아가씨가 마음에 들었다.




해가 바뀌고,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다.

이제부터 그들 앞에 펼쳐질 2년이란 시간이 그날, D-Day에 부모의 허락을 받아내는 것보다 더 험난한 시련이 될 줄을 그때 그들은 알지 못했다.




대문사진 : Pixabay로부터 입수된 Jupi Lu 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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