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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나

by 블루랜턴

태어난 곳이 바닷가도 아니고, 더구나 수영도 할 줄 모르면서 나는 바다가 많이 그립다. 심지어 바닷속을 거니는 꿈을 꾼 적도 두어 번 있다. 바닷속 저 밑바닥 모래 위로 나있는 길을 천천히 걸으며 양 옆에서 흔들거리는 산호초와 희귀한 색깔의 물고기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다 깨어나는 것이다. 그때 바닷속은 엄마의 자궁 안처럼 포근하고 조용했으며, 바닷물은 양수처럼 따뜻하게 나를 감싸 주었다.


바다를 처음 본 것은 고2 수학여행에서였다. 울산 앞바다였나, 포항이었나? 경주를 지나서 갔으니 아마도 포항일 것이다. 그것은 내가 경험한 첫 바다였기에 지역이 어디냐 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몇 초 간일까? 탁 트인 수평선을 마주 보며 뇌가 뻥 뚫린 느낌을 받은 것은. '바다다!' 친구들의 함성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그들의 움직임에 상관없이 나의 몸과 마음은 일순간 정지되었었다. 수평선으로 분명하게 나뉜 공허한 하늘과, 두껍게 일렁이는 바다물결은 지극히 대조적이었다. 누런 바다는 치열했고, 파란 하늘은 냉정하리만치 무심해 보였다. 텅 빈 나의 뇌 속으로 영혼처럼 미역냄새가 훅 들어왔고, 이내 바다를 배경으로 친구들과 사진을 찍자마자 다시 버스에 올랐던 기억이 있다.


신혼여행지였던 제주의 검푸른 바다는 깊고 묵직했지만, 나의 첫 바다만큼 강렬하지 않았다.


가계가 기울고 도망하다시피 동해안 작은 마을로 옮겨왔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바닷가에 올망졸망한 아이 셋을 데리고 여행도 아니고 관광도 아닌, 그저 살려고 온 곳이었다. 하필 바닷가라니? 낡은 빌라 3층 거실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절망적이었다.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지? 언제쯤이면 다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까? 도저히 답을 구할 수 없는 막막함에 바닷속으로 빠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하루에도 여러 번 일어났었다.


나의 절망과 무관하게, 바다는 아침마다 빨갛고 예쁜 해를 물 위로 띄워 올렸다. 날마다 뜨는 해는 날마다 새로웠다. 이것 봐, 너무 예쁘지 않니?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 아니니? 너가 지금 이 예쁜 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지 않니? 움트는 새벽 어슴푸레한 거실창에 서서 힘겹게 올라오는 해를 보며 차츰 그것이 답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치열하게 바다를 빠져나온 해는 금세 안정을 찾고 하늘 위에서 제 할 일에 열중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 갯바위로 나가서 말미잘을 보고 따개비를 따고, 모래사장에서 소라껍데기를 주우며 복잡한 심경을 털어버리곤 했다. 떠내려온 미역을 주워와 데쳐먹고, 조개를 캐서 삶아 먹으며 바다가 내주는 품 안에서 작은 평화로움을 느꼈다. 바다가 그립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이때부터였나 보다.

서서히 웃는 날이 많아졌고, 적금을 들며 미래를 꿈꾸는 시간도 생겨났다. 그렇게 바닷가에서 5년을 살고, 다시 아무 연고 없는 캐나다 먼 곳으로 이사 왔다.



내가 사는 토론토에는 바다가 없다. 그래서일까? 바다가 더 자주 보고 싶어진다.

탁 트인 수평선을 보며 뇌를 텅 비워내고 싶고, 공허한 하늘을 보며 더없이 무심해지고 싶다. 오르락내리락 우리네 삶처럼 일렁거리는 파도를 보며 짜릿한 전율을 느끼고도 싶다.


이곳에서 바다를 보려면 퀘벡이나 노바스코샤 같은 다른 주로 가야 한다. 이름이 '해순'이었나? 한국 단편 소설 '갯마을'의 여주인공처럼 바다를 보기 위해 산꼭대기를 올라가도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토론토에는 오를 수 있는 산도 없다. 대신 야트막한 동산과 광활한 숲이 있고, 나머지는 평지다. 어떻게 하면 나의 바다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물이 그리운 나는 바다만큼이나 커다란 온타리오 호숫가 작은 집을 꿈꾸지만, 호숫가 모래사장에서는 미역냄새를 맡을 수 없다. 갯바위 말미잘도 없다. 민물과 짠물은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르지만 어쩌겠나, 꿩 대신 닭이라도 잡을 수밖에. 아무튼 빨갛고 예쁜 해는 호수 위에도 떠오르고, 도심 속 빌딩 숲 위로도 떠오른다. 다행이다. 더욱 위안이 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날마다 뜨는 해는 날마다 새롭다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평한 이 새로움을 다만 내가 느끼면 되는 것이다. 조만간 한국에 나가 미역냄새나 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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