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인데... 제발 그만 좀 먹어!

12년째 이어지는 하이드 앤 시크

by 블루랜턴

남편은 당뇨인이지만 먹는 것 앞에서는 그 사실을 아예 잊어버린다.

나는 건강인이니 단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남편을 고려해서 나는 먹는 것들을 숨기지만, 그 사실을 곧잘 잊어버린다.



큰 딸이 챙겨준 쿠키를 나 혼자만 먹으려고 사무용품 서랍 안에 숨겼다. 내가 좋아하는 두툼하고 촉촉한 식감의 쿠키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남편이 나 몰래 찾아내서 벌써 두어 개 먹고는 여봐란듯이 냉장고 서랍 안에 넣어두었다.


한 달 뒤 큰 딸이 다시 쿠키를 보내줬다. 이번에는 남편이 잘 열어보지 않는 주방 캐비닛 안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나는 또 잊어버렸다.


어느 날 손자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남편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반을 쪼개 손자에게 주고 나머지 반을 내 입에 넣어준다. 쿠키였다. 그리고 다른 한 개는 본인이 먹는다. 코를 훌쩍 들이마시면서.


숨겨놨다는 것을 잊고 있던 나는 그날 그게 처음 먹은 거였다. 내가 처음 먹었다는 사실보다 남편이 찾아냈다는 것에 부아가 났다. 봉지에 몇 개 남아있는 쿠키를 이번엔 절대 찾을 수 없는 내. 옷장. 속. 안 입는 패딩. 모자 안. 에 깊.숙.이. 다시 숨겼다.


모자 깊숙이 넣었다가 사진촬영을 위해 잠깐 얼굴 드러낸 나의 쿠키, 이번엔 잊지 말자!




나와 남편의 숨바꼭질은, 남편의 12년 당뇨 역사와 그 길이를 같이 한다.


당뇨 진단을 받고 나서도 늘 마시던 콜라를 끊은 것 말고 남편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도넛, 과자, 사탕, 떡, 주스, 탄산음료(콜라만 제외), 과일, 고봉밥....


먹으려고 할 때마다 말려야 했는데,

못 먹게 하니 몰래 먹고, 먹지 말라는 말에 서러워하고, 먹으면서 죄의식 느끼고,

말리는 나도 점점 지치고, 당뇨도 없으면서 나까지 못 먹고… 둘 다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먹고자 하는 사람을 말릴 수 없다. 그렇다면 숨길 수밖에. 나는 먹어야 하니까. 하도 숨기니 이제는 숨길 만한 곳도 없고, 그러는 사이 남편은 도가 텄다. 다른 집들은 비상금을 숨기고 찾는다는데, 우리 부부는 모양 빠지게 먹을 거를 숨기고 찾아낸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그동안 또 쿠키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저 냥반, 도대체 언제 자려나~

귀 밝은 남편을 위해 먹는 소리까지 숨겨야 한다.




대문 사진: Photo by Gerd Altmann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