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반은 남자 아니면 여자
오래전의 일이다.
전화가 걸려왔고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남편의 이름을 대며 지금 집에 있느냐 묻는다. 목소리는 예의 있고 밝았으며, 티끌만큼의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누구나고 묻지 않았는데 여자는 본인을 소개했다.
'OO랑 대학 동창인데, 제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연락이 끊겼어요. 이번에 오랜만에 한국에 나와서 약 한 달간 머물 예정인데, 돌아가기 전에 한번 만나고 싶네요.'
드라마에서나 봐오던 일이 나에게 벌어졌고, 이토록 당당하게 남편을 찾는 여자도 없었다. 내 남편의 이름을 제 아들 부르듯 하는 그녀는 내 남자와 도대체 얼마 큼이나 친한 사이였을까? 나도 아직 말을 놓지 않고 '하시오'체를 사용하는 남편인데 오롯하게 이름을 부르며 OO랑, 이라니!
파르르 일어나는 동요를 들키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최대한 자연스럽게 응답했다.
'아, 그러세요. 남편이 지금 집에 없는데 이따 저녁에 다시 전화해 주시겠어요?'
당시 연년생 딸 둘이 유치원에 다닐 때이고, 셋째가 내 뱃속에 있던 걸로 기억한다. 나중에 그녀의 말에 의하면, 오히려 어처구니없는 것은 나의 태도였다고 한다.
내 남편의 이름을 다른 여자가 허물없이 부른다는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생각은 동일하다.
남편은 나에게나 연장자이지 지들 친구끼리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
친구가 옛 친구를 찾는 것이고, 상대가 여자일 뿐이라는 것.
세상에 반은 남자고 나머지 반은 여자인데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만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는 것.
저녁에 전화가 다시 왔고, 나는 흔쾌히 남편을 바꿔줬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언제 나왔냐, 어떻게 미국에 갔냐, 이번에 무슨 일로 나왔냐, 언제 들어가냐, 하하 호호하며 시끄럽게 통화가 끝났다.
다음 날 남편은 이미 내게 낯이 익은 친구들 네댓 명을 집으로 불렀고, 그녀는 초대된 친구들 중 유일한 여자였다. 작은 체구에 밝고 귀여운 생김새였다. 대학 시절 내내 요렇게 지들끼리 몰려다녔다고 한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내게 다가와 고맙다고 했다. 뭐가 고맙죠?
여기 모인 다른 남자들의 부인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남편을 바꿔주지 않았으며, 심지어 누구냐고, 누군데 남의 남편을 찾느냐며 꼬치꼬치 캐물었다고 했다.
선뜻 바꿔준 사람은 나 혼자라지, 험! 나의 신뢰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남편의 어깨는 한껏 올라가 있었고, 목소리에도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그녀는 모든 남자 친구들에게 동일한 거리를 두었고, 특별히 내 남편에게 그윽한 눈길을 보낸다던가 혹은, 지들 둘만이 아는 무언의 몸짓 같은 것도 없어 보였다.
봐, 별 거 아니잖아. 안 바꿔줄 게 뭐 있어. 다 나오라고 해, 난 다 이길 수 있어!
차려낸 음식과 술을 주거니 받거니 먹으며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남자들은 미국물 좀 마시고 온 그녀의 이야기에 장단을 맞추었다. 그리고, 남편과 그녀의 재회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내가 아는 한.
상단 이미지: Pixabay로부터 입수된 Michael Hourigan님의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