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간병 보고서
2023년 한국의 어느 시골 약국에서 일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92세이신 시아버지 간병하느라 남편은 주말마다 서울과 지방을 오르내렸다.
20년 전 홀로 되신 아버님은 작년까지 아주 건강하게 지내시다가, 추석 무렵부터 갑자기 쇠약해지셨다. 노년기 남자들의 고질병인 전립선비대증이 있었지만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셨는데, 봄에 코로나에 걸려 앓고 난 후로 식욕도 잃고 기운도 잃으셨다. 급기야 배변길이 막혔고, 결국 전립선 축소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 후에도 한동안 거동이 불편하고, 혼자서는 화장실도 힘들어하셨다.
자식 넷 중에 장남인 남편은, 동생들과는 달리 매일 가야 하는 직장도 없고, 세심한 성격에 나보다 더 깔끔을 떠는 지라 이리 보나 저리 보나 간병인 당첨 일 순위다. 당첨이랄 것도 없이 자청해서 시작한 아버지 병간호로 인해 남편과 나는 다 늙어 주말부부가 되었다.
처음 일주일 간병을 마치고 주말에 내려왔을 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렇지만 동생 놈들 하는 거 보니 자식들 다 소용없고 부부가 제일이야. 에휴, 마누라한테 잘해야지.'
(하이고~ 그걸 이제 알았남!) 얌통머리 없는 나는 톡 쏴댄다.
-늙어서 아프면 뭐 마누라는 좋아하나? 아픈 늙은이 좋아할 사람 아무도 없으니 건강관리 잘 하숑!
두 번 째인가 주말에 내려와서는,
'아버지도 참 말 안 들어. 내가, 아버지 산책해야 돼요. 의사가 운동하라 했어요, 해도 안마의자하면 된다면서 산책 안 해.'
(하이고~ 저는 내 말 듣남!) 나는 또 쏴댄다.
-자기가 아버님 닮았구만~ 자기 모습을 본다고 생각하숑!
셋째 주에는 간병인의 하루를 이야기한다. 아버지를 씻기고, 운동을 시키고, 수술 부위를 소독하고, 기저귀를 채우고, 음식은 어떻게 해드리고 등등... 어려서 부모 속 썩인 대가를 지금 치르는 마음이라 한다. 이번에는 쏘가리인 나도 마음이 짠해졌다. 본인도 당뇨환자인데 다른 사람 병간호가 얼마나 힘이 들까!
넷째 주 주말, 금요일에 내려온 남편은 아버지가 많이 회복되셨다며 좋아라 한다. 잘 드시고, 잘 걸으시고, 자력으로 소변도 보시고, 혼자 목욕도 하실 만큼 좋아졌다며 그동안의 성과를 늘어놓는다. 하긴 남편이 아니면 누가 그렇게 24시간 간병을 하겠는가! 언제나 말씀 없는 차갑고 엄한 아버지를 살뜰하게 간호하는 착한 아들이 또 어디에 있을까!
고생하는 남편을 위해 저녁으로 맛있는 초밥을 먹기로 했다.
-자기야, 초밥 먹으러 가자!
'초밥!.... 비쌀 텐데...'
남편의 입꼬리가 귀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이틀 뒤 일요일에는 한우 생등심을 먹었고, 남편은 다시 간병하러 고속버스를 타고 아버님댁으로 올라갔다.
상단 이미지: © mohamed_hassan,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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