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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Apr 16. 2024

남편의 골프채를 부러뜨렸다. 그것도 세 개나.

이렇게 살 줄 몰랐다.

약국 일은 나의 적성에 안 맞았다. 우선 환자를 상대로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안 맞는다. 말하기 싫어하는 나는, 제발 손님 좀 안 왔으면, 하면서 조제실 뒤 소파에 앉아 있거나 졸기 일쑤였다. 말하는 것도 에너지가 필요한 일인데 육아에 살림에 하루 13시간씩 약국 일을 하다 보니 피곤하고 기가 달리는 것은 당연했다.


아이들과 놀아 줄 시간도 부족하고, 남편은 늘 집에 없고, 약국 수입 한 달 결산을 해봤자 제약회사 좋은 일만 시키는 것 같고, 생활비 쓰고, 직원 동생 월급 주고 나면 사실 남는 것도 없었다. 거기에 더해 남편은 골프비용까지 내게서 받아갔다. 나를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두어 돈을 벌게 하고, 들로 산으로 놀러 다니는 남편이 밉기도 했지만, 그보다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 나는 약국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즈음 셋째 임신을 계획 중이어서 임신만 하면 바로 약국을 접을 생각이었다.

 



임신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미련 없이 약국을 그만두었다. 남편은 마침 부모님 사업에 동참하면서 또박또박 월급이라는 것을 받아왔다. 연년 생 두 딸을 유치원에 보내고, 나는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배우는, 내 생애 최고의 행복한 시절이었다. 살림을 해보니 요리도 재미있고, 집 꾸미기도 재미있고, 화초 가꾸기도 재미있었는데, 그중 으뜸인 것은 남편 월급을 아껴서 매달 적금을 붓는 돈 모으기였다. 비록 사업이 망해서 만기를 채우지 못했지만 정해진 날에 들어오는 월급으로 계획경제라는 것을 해본 때였다.


부모님의 회사이니 남편의 출퇴근은 완전 지맘대로였다. 애초에 꾸준함이 없는 사람이 꾸준한 직장생활을 이어갈 리 만무했다. 해오던 프리랜서 일이 들어오면 회사에 안 가고, 골프 스케줄이 생기면 안 가고, 회사 가기 싫으면 일 생겼다 하고 안 가고..... 그러더니 5일 동안 연달아 골프를 치고 밤 늦게 귀가했다. 고등학교 때 지 담임했던 선생님하고 쳤다나. 선생님이 내일 또 하자고 해서 또 하고 또 하고 그랬다나. 집에서 왔다 갔다 했으니 외박은 아니다. 남편이 골프에 미쳐서 놀러 다닌 5일 동안 나는 독박 육아에 지치고, 분명히 혼자가 아닌데도 혼자인 듯한 외로움으로 우울했다.


5일째 되는 날 밤 남편이 들어왔다. 평소에 나는 말이 없고 불평도 없지만, 화가 나면 무섭다.

다짜고짜, 골프백 어딨어?

남편은 심드렁하니 '밑에 차 트렁크에 있지.'

갖고 올라와!

'뭐? 왜? 필요한 사람이 직접 가져와. 차 열쇠 여기 있어.'


나는 한 걸음에 아파트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무거운 골프백을 낑낑거리며 들고 올라왔다. 그리고 남편이 보는 앞에서 골프채를 하나씩 부러뜨리기 시작했다. 한 개, 두우~개!, 세에~, 아얏!

골프채의 재질은 겉은 쇠로 되어있고 안에는 나무다. 뻗쳐 오르는 홧김에 두 개는 부러뜨렸는데 세 개는 무리였나 보다. 골프채가 튕겨져 나가면서 왼쪽 발바닥에 상처가 났다. 내 발에 생긴 상처보다 나의 시퍼런 서슬에 남편은 이미 질려있었다.


내가 이러고 살 줄 알았냐고~ 흑흑! 내가 자기랑 결혼할 때 이렇게 골프채 부러뜨리면서 살 줄 알았냐고~ 엉엉~




그 후 남편은 한 동안 골프를 하지 않았다. 골프채가 부러져서 할 수도 없었다. 내게 미안한 건지, 골프를 못해서 심심한 건지 축 쳐진 모습에 목소리까지 작아진 남편이 짠해서 나는 또 한마디 했다.

내가 골프채 사줄게, 다시 해...


남편에게 골프채 소동 이야기를 들은 시아버지는 나를 다시 쳐다봤다. '에미가 골프채를 분질렀어!, 허허 참!'



상단 이미지: Pixabay로부터 입수된 Pexels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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