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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Apr 13. 2024

어려서부터 엄마 말을 안 듣더니

말 안 듣는 청개구리 남편 머리부터 발 끝까지.

어려서부터 엄마 말을 그렇게나 안 들었다던 남편은 결혼 후 아내인 내 말도 징글맞게 안 듣는다.


끊으라는 담배는 기를 쓰고 피워대고, 마시라는 생수는 사약 보듯 대하며, 마시지 말라는 콜라는 냉장고에 지정석까지 정해두었다. 약 먹을 때도 물 대신 콜라로 한 입에 털어 넣고 꿀꺽하더니, 나이 오십에 가족력에도 없는 당뇨를 얻어걸렸다.


눈에 띄게 어디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당뇨 따위 그딴 것에 남편이 바뀔 리 없다. 60세가 넘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내 말을 안 들으며 떡, 과자, 빵, 초콜릿 주전부리는 입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먹지 말라 하면 몰래 숨어서 먹는데, 이제는 나도 늙어 말하기도 귀찮고 먹든 뱉든 내버려 둔다. 나는 저를 낳은 엄마도 아니고, 말 안 듣는 남편 이쁘다 하는 아내는 더욱 아닌데, 병 깊어 수족 못쓰면 그때서야 내 말 들을까!




남편의 말 안 듣는 역사와 그 결과는 이러하다.


흰머리 새치 나올 때마다 늙은 꼴 추하다며 한 올 한 올 뽑아대던 남편은, 염색을 하라 해도 내 말 안 듣고 저 혼자 거울 보며 눈알이 돌아가도록 뽑아대더니, 그 많던 머리숱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Photo by hartono subagio @ Pixabay


그뿐인가!

다른 운동은 안 해도 골프는 치겠다는 남편은, 얼굴 타면 빨리 늙으니 선크림 바르라 챙겨줘도 간식거리만 살짝 들고 좋아라 뛰어 나간다. 젊어서 하얗던 피부를 몇십 년 그렇게 팽개치더니, 이제는 그을음이 벗겨지지도 않고 주름도 자글자글 인상 험한 두꺼비가 되었다.


Photo by Thomas Oxford on Unsplash


더 있다.

하루에 삼시 세끼 기본에 더해 틈틈이 온갖 과일, 빵에 사탕이며 자다 일어나서 과자 깨물고 다시 자는 남편은 힘 준 맹꽁이마냥 배까지 동글 나왔다. 어찌 그 많은 음식을 다 소화해 내는지, 그것으로 부족해 이제는 위장약까지 쓸어 넣는다.


Photo by  David Clode on Unsplash


하나 더 보태자.

몸관리하라 아무리 일러도 생긴 대로 산다며 내 말 안 듣더니, 60대 초로에 근육살 다 빠져나간 가느다란 다리만 남았다.


Photo by Zdeněk Macháček on Unsplash




주름진 시커먼 얼굴에 앙상한 다리로 휘적휘적 앞 서 걸으면 내 자식 못 먹인 에미 맘 같아, 말 안 들은 원망보다 미안함이 더 커진다. 얼른 쫓아가 무거운 것 나눠 들고 웃어 보이지만, 역시나 봉지 속엔 달달한 음료수 2리터가 들어있다.


아, 인간아, 제발 음료수 말고 물 마시라고!


짠한 남편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어느새 청개구리 한 마리 뺀질하니 서 있다.




상단 이미지출처: Alexandra Garcia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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