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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Apr 20. 2024

님아, 제발 그 입 다무소!

내 가운데 손가락 튕겨나가기 전에.

항상 내가 만든 음식에 무언가를 더 첨가하는 남편은 잘 나가던 한정식 갈빗집 큰 아들인데, 언젠가 내가 끓인 갈비탕에 묻지도 않고 햄을 넣었다.


흠, 그렇다면 나도 그냥 못 있지.


커피 한잔 달라하는 남편에게 햄 한 조각 퐁당 넣어 대령했더니 아무것도 모르고 홀짝홀짝 잘도 마신다.

햄조각이 드러나자 그제야 풉! 하고 입에 담은 커피를 뿜어내고는, '정말 넣었어?' 하며 웃음을 흘려낸다.

당연하지, 내 갈비탕에 햄을 넣었는데. 어때, 구수하니 커피맛이 더 좋드나!

이제는 내 음식에 토 달지 마소!


말 안 듣는 남편이 말하기는 좋아해서 본인이 말할 때는 예를 들고 대사까지 넣어가며 장면을 묘사하는데,

'예를 들어서...'가 시작되면 듣고 있던 아이들과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장시간 모드로 급전환한다. 인정 많은 큰 아이는 가끔 고개도 끄덕여주지만 남편의 말은 귀에 닿자마자 반사되어 바닥에 떨어져 버린다.


아, 됐고! 


신나게 이야기를 펼치려던 남편이 급정지되며 어벙해진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님아, 제발 예 들지 말고 짧게 말하소!


무엇을 가리킬 때 멀쩡한 검지 대신 항상 가운데 손가락을 쓰는 남편은, 그러면 욕이 된다며 가운데 접어 넣고 검지를 펴줘도 어느새 다시 가운데 손가락을 튕겨내는데, 민망한 건 내 차지, 상대의 안색을 살피느라 분주해진다. 슬쩍 펜 하나를 손가락에 끼워주어도, 이건 왜 주냐며 옆으로 밀어놓고는 끝까지 가운데 손가락을 쓰고야 만다.

님아, 제발 검지를 쓰소서!


오늘은 어디 바닷가로 해서 걷다가 커피도 한 잔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바람 쐬러 나가자는 남편의 꼬임에 넘어가 소풍 가듯 설레며 따라나선 날, 으리으리하고 전망 좋은 커피숍 다 지나고, 스테이크하우스, 파스타집도 다 지나고, 결국엔 돌아오는 길 대로변 맥도널드로 가는 남편이 한마디 한다.

 

'요즘엔 맥도널드 햄버거도 비싸'


님아, 제발 그 입 다무소! 내 가운데 손가락 튕겨나가기 전에!




상단 이미지: © CDD20,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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