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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Apr 27. 2024

바나나 우유 사랑

늙은 부부의 사랑고백

-7화. '시아버지의 간병인'에 이어서.


홀로 계시는 시아버지 간병 때문에 주말에만 집에 내려오는 남편은 매일 저녁 편의점에 내려가 바나나 우유를 사다 놓는다. 그것도 딱 한 개만. 저녁을 먹고 글을 쓰다가 또는 책을 읽다가 뭔가 시원한 것을 찾는 나를 생각해서인데 내가 사달라고 먼저 요구한 적은 없다. 냉장고에 넣어둔 바나나 우유를 나는 남편이 보는 앞에서 단숨에 죽 시원하게 마신다. 그 모습이 좋아서인지, 많이 사두면 한 번에 다 먹을까 봐서인지는 모르지만 남편은 매일 저녁 딱 한 개만 사둔다.


그날도 쭈욱~ 쉬지 않고 마시고 있는데 순간 내 마음을 스치는 감정 하나 있어 수줍게 고백을 했다.


있잖아, 내가 이걸 마시고 있는데 꼭 내가 자기의 사랑을 마시고 있는 것 같았어.


물 마시던 남편이 뿜어져 나오려는 물을 간신히 입술로 눌러 막으며 웃음을 토해낸다. 낯간지러운 나의 고백이 남편을 당황시켰지만 얼굴에는 분명 행복과 기쁨의 미소가 번득였다. 바나나 우유가 그날따라 유난히 달콤했나 보다. 저 무뚝뚝한 아내가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남편이 멋쩍게 말한다. '우리 아버지는 이걸 대놓고 마셔. 하루에 서너 개씩.'


주말부부여서 생긴 난데없는 애틋함일까? 젊어서도 안 하던 사랑고백이라니. 나는 간병하느라 고생하는 남편이 짠하고, 남편은 돈 버느라 고생하는 내가 짠하다. 근사한 명품백도 아닌 기껏 바나나 우유 하나에 감동을 하고, 평생 들어본 적 없는 흔하디 흔한 사랑이라는 단어에 맥없이 행복해한다.



남편은 저녁마다 수시로 담배 하러 밖에 나간다. 먹는 것을 좋아하니 나간 김에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와 주전부리를 사들고 오는데, 구색 맞추느라 내 것도 하나 챙겨 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바나나 우유에 담긴 남편의 마음이 사랑인 것을, 최소한 208kcal의 에너지가 담긴 달콤한 온정인 것을, 나는 시원하게 마시면서 느끼고 있다. 내가 그렇게 느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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