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에 대한 단상

by 김하정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모두가 결산을 서두르고, 각종 매체에서는 앞다퉈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상을 내리느라 바빴다.

그중 활동은 하고 있지만 실력과 무관하게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가수들이 '다시' 도전하는 경연대회도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이 무대를 통해서 무명을 벗어나 자기 이름을 각인시키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참가자가 다 그렇지만 유독 매 라운드마다 독보적인 무대를 선보이던 가수를 응원하게 됐다. 이 무대를 통해서 그 이전의 이력까지 샅샅이 찾아보게 되는 수고도 즐거웠다. 새해를 목전에 두고 이만큼 미쳐야 살아갈 수 있겠구나,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다짐하게 만드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었다.


사실상 마지막 무대가 돼버렸지만, 곡이 거의 끝나가고 숨을 고르다 울컥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한 소절이 떨린다. 그렇다 쳐도 그것으로 향방을 가를 만큼은 아니어서 심사위원 점수로 순위에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백단위가 빠진 너무 저조한 방청객 투표였다. 역으로 심사위원 점수가 가장 낮은 가수가 방청객 투표로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납득이 되지 않은 현상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응원하던 가수는 최종 탈락했다. 룰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달랐다. 경연대회는 늘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라지만 형평성에 반한 것이어서 여운은 오래갔다.


이럴 거면 심사위원 점수가 왜 필요했을까? 다른 경연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것으로 미리 제쳐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럼 애초에 어게인이란 단어를 왜 썼을까.. 이 가수도 소속사를 잃어서 재도전한다는 것을 신파 섞이게 어필했어야 했을까? 댓글창이 서버가 터질 정도였다는 게 많은 것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 기준점이 모호했던 것이다.


순위탈환한 가수에게도 영예롭지 않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중의 시선은 생각보다 따가울 것이어서 오히려 이 무대를 통해서 장단점을 보완하는데 써야 할 시간을 치유의 시간으로 쓰게 될까 염려하게 된다. 아직 앳된 가수에게는 우선은 영예로울 망정 멍에가 되지 않을까 부모의 마음이 돼보기도 했다.


더구나 매년 똑 같이 진행하던 것을 갑자기 방식을 바꿔버린 것이다. 신곡과 편곡을 합해서 산출하던 것을 편곡무대를 갑자기 없애버리고 신곡무대로만 결정지은 것이다. 연말 안에 끝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새해로 이어지는 것이었는데도 진행 방식까지 생략해 버린 것은 일관성이 없어 보였다. 노래에 향연으로 다채롭게 채웠어야 할 부분을 헐겁게 만들었다. 정통성이 사라진 듯했다. 있었던 것을 없애는 것도 분명 혁신에 속하지만 이 경우는 허전할 따름이었다.


곳곳에 공정하지 못한 일들이 적지 않아서 정의로운 결판을 내는 드라마들이, 소설들이 왜 각광받는지..

그런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나마 위안을 받는 것일 텐데 여러모로 아쉬운 무대였다. 애쓰지 않아도 누구나 그럴 법하다 느낄 수 있는 선에서 지켜지면 좋을 것들이 의외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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