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 두 번째 기제사를 치르고 며칠 동안 마음이 분분했다. 산제사였지만 집제사처럼 3년은 지내드리고 싶었다. 돌아가신 분이 뭐 알까 싶지만 어머님과 지냈던 시간들과 작별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
요양원 생활을 빼고도 25년을 같이 했던 시간들이 속절없기도 해서 자청한 일이었다.
일찍 홀로 돼서 자식 다섯을 건사했으니 고단도 하셨겠다 백번 헤아리면서도 매콤 쌉쌀했던 시간들이 적지 않아 그 공이 묻히곤 했던 시간들이었다. 돌아보면 그다지 추억은 없으면서도 말년을 요양원에서 마감하신 게 모시지 못했다는 부채로 남아있었던 것 같다. 치매로 고생하셨지만 순간순간 정신이 들 때면 키워놨더니 이런 곳에 맡겼구나 자식들에 대한 원망이 왜 없었겠나 싶은 것이다. 더구나 남편은 장남이니 그 마음이 더 했을 것이어서 일주일이 멀다 하고 자주 방문하는 것으로 대신했던 것 같다.
대리석판 위에 음식이 담긴 목기가 가로 세로 열을 맞춰선지 꽉 찬 듯 수고로움을 잊고 보기 좋았다.
그런데 사진을 찍어가며 고무됐던 첫 번째 제사 때와는 반응들이 사뭇 다르다. 시큰둥하다 못해 이게 방 안 제사지 산제사냐 들릴 듯 말 듯 두런거린다. 한쪽에서는 이번이 두 번째인가? 점잖은 듯 내 년 한 번 더 남은 샘이네 지루해하는 빛이 역력하다. 내 시간과 비용은 고사하고, 그제야 올봄 아버님 기제사 때 아무도 오지 않아서 남편 혼자서 술잔 올렸던 것이 떠올랐다. 분배가 끝났으니 이제는 참석조차 의미가 없어졌구나 했던 것을 잊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시누이가 산제사를 거론했을 때는 나의 수고를 덜어주려는 배려겠거니 했다. 결혼 초부터 딸들도 상속권이 있다고 맥락 없이 주입시키던 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가 된 것뿐이었는데..
얼마 되지 않은 어머님 지분을 똑 같이 나누기 위한 묘책이었음을 알면서도 다 같이 참석하기 위한 것이겠지 했던 것이다.
돌아와 목기를 정리하고 있는데 문자음이 울린다. 보나 마나 수고했어, 올케.. 우리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도하겠다는 걸 테니 차 후에 봐도 무방했다. 면전에서는 없던 인사가 늘 장황하다. 그때까지도 남들도 3년은 지내니 내년 한 번 더 지낸 후에 간소해지면 될 것 같네요 답했다. 그렇게 해, 형식이 뭐 중요하겠어? 한다.
나는 왜 이렇게 둔한 걸까 뒤늦게야 정리가 된다.
"남편과 저는 형님들이 참석한다는 전제로 산제사 제안을 하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지내던 것을 산에서 지내자니 적게 하든 많게 하든 저희로서는 더 번거로운 일이니까요.
게다가 저는 눈치 없이 두 분 합제사 하기 전에 세 번은 해드리자는 마음으로 방안 제사처럼 하고 있으니
안 오실 수도 없고,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제가 오버하는 것처럼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미리 귀띔해 주셨으면 작년 한 번으로 가름했을 텐데요~.
모두를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꼭 삼세번이어야 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형님 말씀처럼 형식이 중요한가 싶고, 어머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는 갖춘 것 같기도 해서 이번으로 갈무리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불편함 없게 명절 때처럼, 산제사답게 간소하게, 각자 시간에 맞게 하면 좋을 것 같네요.
더하거나 덜해도, 오고 가는 것에도 구애됨 없이 그게 맞을 것 같습니다."
비로소 출구를 찾았다. 잔잔한 것, 부드러운 것, 곡선인 것, 맺힘 없는 것만 보고 살아도 부족한 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