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내일모레 출국 한다. 몇 박 며칠 여행이 아니다. 대학원 연구과정 중에 노르웨이 대학과 공동연구를 목적으로 한 달 남짓 머물 예정이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필요한 것들을 물색하고 주문하기를 반복했다. 유튜브에 그 나라를 다녀온 사람들의 노하우를 캡처하고 기록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다. 다 준비된 듯 그렇지 않은 듯 뒤숭숭하기만 하다.
연구는 모르겠고, 내 관심사는 오로지 의식주 해결이 가장 크다. 춥지 않을까, 아프지 않을까, 분실하지 않을까 염려한다. 뭘 그렇게 까지 준비하냐고 핀잔받기 일쑤인데도 그게 아니라고 만일까지도 대비하려는 형국이다. 염려는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된다고, 제발 그 나머지는 맡기라고, 내가 질색팔색했던 데칼코마니 내 부모님의 재연이다. 누가 지적하지 않아도 되갚고 있구나 싶어 실소한다.
아이는 아이대로 막상 가려니 부모님 결혼기념일이 걸리고, 일정 탓에 공항까지 못 가는 아빠가 걸렸나 보다. 바쁘지만 아빠는 보고 가야 한다며 짬을 내서 다녀갈 모양이다. 설 명절도 지나서 오게 되니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미리 성묘할 것도 염두에 둔 것 같다. 아이는 아이대로 본인의 부재로 같이 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미안함이 배가된 듯하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는데 꼭 그렇지 만은 않는 것 같다. 서로 염려하는 것에서 벗어나 각자의 시간에 충실하기로 한다.
우스갯소리로 이왕 노르웨이 간 김에 뭉크의 '절규' 배경이 됐던 에케베르크 언덕에서 인증샷쯤 찍어 와야지 했더니 정색을 한다. 머무는 곳에서 너무 먼 곳에 있어서 그럴 시간이 없다고 일축한다. 그래, 나라에서 지원한 연구비가 도루묵 되지 않게 열심히 해야 맞지 싶으면서도 재미없는 놈, 그러니 연구나 하지, 체질이다 싶다.
'웃자고 하는 말을 다큐로 받네' 싶은 데다가 빡빡한 일정에 물정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조금은 민망하기도 했던 것 같다.
아이야 내 말인즉슨, "그저 연구에만 매몰된 채 휴일을 반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타국에서 맞는 처량 맞은 설 명절이 아니라, 겹겹이 둘러쳐진 광활한 대자연의 황홀경 속에서 한 번쯤 우주의 미아가 돼 보길 바란다. 자기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이란 말이다. 알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