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마저도..

by 김하정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었다. 짐은 좀 있어도 딸아이와 함께여서 수월했다. 큰아이와 합류하기 위해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 두 분이 아이를 유심히 쳐다보셨다.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눈매만 보일 텐데 참 예쁘다 예쁘다 하셨다. 손녀 보듯 하시는 것에 우리도 따라 웃는다. 거기에 더해 마스크 좀 내려봐봐 하셨다.

"고친 데도 없고, 완벽해 perfect!" 뜻밖의 상황에 엉거주춤 "감사합니다" 서로 거리낌 없이 웃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지나친 사생활 침해일 수 있었다. 말을 살짝 비틀면 빤히 쳐다보신 것부터 마스크를 내려 봐 달라고 하고, 성형유무까지 살핀 것도.. 하지만 경계의 마음이 끼어들기에는 그 과정이 스스럼없고 유쾌했다. 쳐다봤을 때 기분이 언짢았다면 아이도 뾰로통 고개를 돌렸을 테고, 그다음으로 이어지지도 않았을 테니까.. 거기에 제자식 칭찬에 이유불문 무장해제돼버린 내 탓도 있었을 것이다. 두 분 덕분에 두고두고 기분 좋은 얘기거리가 됐다.


그에 비해 얼마 전 큰아이가 맞닥들인 상황은 전혀 달랐다. 휴일, 카페에서 과제하다 잠깐 고개 들었는데 건너편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단다. 대뜸 왜 쳐다보냐고 따져 물어서 어이없었다는 -- 정작 당한 느낌이 드는 건 이쪽인데 불필요한 해명을 해야 하는 건 역차별이라고 억울해했다. 시험 보다가 고개만 들어도 부정행위로 몰리는 격이니 자연 풍경 말고는 무생물에게 시선을 두는 게 안전하단다.

딸이이도 내가 없었다면 쳐다보는 시선이 싫어서 팽 돌아섰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 없었으면 마스크까지는 안 내렸겠지만 칭찬해 주시니 목례정도는 했을 거란다. 두 경우를 보면서 호의와 악의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의마저도 상대방이 불쾌했다면 악의가 되고, 종종 처벌의 기준이 되기도 하니까.. 더구나 성별이 다르면 얘기는 더 민감해지고 복잡해진다.


호의일지라도 이쪽과 저쪽의 마음이 교차되지 않고서는 서로가 조심스럽다. 사람들의 마음이 닫혀서만이 아니다. 만의 하나 송사에 휘말리기 싫어서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시키거나 책을 보는 지하철 풍경과도 같아지는 것이다. 이래저래 마음을 내비치는 일도 쉽지 않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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