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습이 필요해"

by 김하정

밤 사이 눈이 소복이 쌓였다. 새봄이 오기 전 마지막 눈일 것도 같다. 꼬집 듯한 추위도 한풀 꺾인다고 했다. 주차장에 차들 위에도 공평하게 내려앉았다. 수분기 하나 없는 겨울 풍경에 충분한 보습이 돼주겠구나, 마음이 놓였다. 고마운 생각마저 든다. 반나절쯤 출입의 불편함이야 있겠지만 메마른 채로 화기를 머금고 있는 것보다야 불편할까 싶다. 땅 속 깊이 스며들어 파릇한 싹을 틔울 준비에 기꺼이 감수할 일이다.


세안 후 스킨로션을 바르는 것을 자주 잊는 남편의 얼굴에 크림을 덕지덕지 발라주며 우리 나이는 “보습이 꼭 필요해". 해를 거듭할수록 자연스럽게 생기는 주름이야 어쩌겠냐만 앞당길 필요는 없잖아. 쩍쩍 갈라진 논밭에 사나흘 물길을 댄데도 중간중간 충당해 놓은 것만 할까 싶다고, 관리소홀로 지레 늙은 남편 싫다고 충격요법을 써도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사춘기 소년처럼 관심이 필요한 건가? 별 수 없다. 귀찮긴 하지만 툭툭 덕질해 주는 수밖에..


생일이다, 기념일이다 상관하지 않고 내 화장품은 열심히 사 나르며 이게 앰플이라는 건데 피부를 탱탱하게 해 준대.. 아예 휴대폰에 알림 설정이 돼 있어서 세일 문자가 뜨면 반값 세일이라는데 뭐 필요한 거 없어? 묻는다. 하마터면 내 알아서 할게 할 뻔, 당신 거나 사서 같이 탱탱해 봅시다. 나와 마찬가지로 주름진 아내는 싫은가 보다. 서로의 주름이, 수분기 없는 푸석함이 제 탓만 같아서 덕질해 주고 사 나르는 거겠지.


결혼기념일에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예민한 내게 안심으로 맞춰오느라 수고했어, 했더니 멋쩍게 웃었다. 중간중간 지치지 않게 응원봉 날리며 서로의 삶이 쩍쩍 갈라지지 않게, 억센 주름지지 않게, 그때그때 수분 보충하면서 유지, 보수키로 의기투합한다. 큰아이가 예비군 훈련 갔다가 PX에서 사다 준 달팽이 크림 함께 바르며 내린 눈처럼 내내 촉촉할 일이다.


마침, 남편의 전화다. 출근길 괜찮았냐는 말에 큰길은 다 녹았단다. 날씨가 푹해서 땀이 폭 난다고 했다. 눈이 소복해서, 혼자 보기 아까워서 집 근처 고등학교 앞까지라도 걸어갔다 오란다. 둘째 아이가 아직 기상 전이라고 했더니 녹기 전에 혼자라도 갔다 오란다. 뽀드득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채비를 한다.

“하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 바둑이가 될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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