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잤다 싶어 눈을 뜨니 설정해 놓은 시간보다 이른 새벽이다. 알람이 필요 없는 때가 된 건가? 아이가 수강신청하는 날, 알람을 설정해 놓고도 혹시 몰라 2차 알람으로 나를 지목하는 걸 보면 그런 것도 같다. 어떤 식으로든 활용도 있으면 좋은 거지 싶다. 점점 내 손을 거칠 일이 많지 않아서 온전히 내게 쓰는 시간이 많아져서일까, '나 어디쯤에 있는 거지?' 수시로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살아온 시간들이 일제히 자취를 감추고 얼 띤 대답이라도 해보려고 입을 달싹거려 보지만,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시간을 채우고만 있었지 하고자 하는 것에 진심으로 매달려 본 적이 없는 것만 같다. 할 말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헷갈리며 살았던 것 같다. 아니, 아직도 찾고 있다면 웃을까? 아이들 키운 건 남들 다 하는 거라 따로 생색낼 거 없고, 꿈 없이 그냥 살기에 바빴던 것 같다.
인천공항에서 큰아이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눈에 띄게 많았던 스타트업 건물들.. 다들 열심히 살고 있구나! 2년만 더 했으면 좋았을까? 새 술을 빚겠다고 어렵게 갈무리해 놓고서는 쓸데없이 후진기어도 넣어봤던 날이었다. 사양이 한참 떨어진 구식 컴퓨터로 전락하지 않게, 한번 더 몰아쳐보고 싶은 것이었겠지. 무색하지 않을 내 주소를 찾고 싶었던 것이었겠지.
쉬면서 많이 긍정적이 됐고, 해보고 싶었던 취미생활들도 두루 섭렵하며 여유를 되찾았지만 충전이 되고 나니 다시 원점에 서 있다. 인생 2막이니 뭐니 거창한 슬로건도 무색하게, 남들은 창업으로 전환점도 잘 찾던데... 별 도움 안 되는 비교에서부터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마무리될 수도 있겠다는 체념까지.. 자신만의 특기를 용케도 빨리 찾아내서 집중하는, 어린 나이의 사람들을 볼 때면 부럽고 부끄럽기도 했다.
심상치 않다. 눈을 뜨면 창조적인 생각이 먼저 들어야 하는데 아침 댓바람부터 자기 검열에 바빠서 어쩌자는 건지.. 이렇게 되면 경험상 하루가 버겁다. 추궁한데도 별반 내놓을 것 없는 국밥 신세라 일단은 후퇴하는 것도 요령이다. 매트를 깔고 난이도 중상의 요가 영상을 따라 하다 보면 생각들이 하나둘씩 잠잠해진다. 쥐구멍을 찾기보다는 잠시 지나가도록 길을 비켜 주는 것이다. 깊은 들숨과 날숨이 여러 번 교차하다 보면 탄식보다는 방법으로 대하게 될 테니까..
아이와 이런저런 얘기 중에 대학 2학년 때 전공을 두고, 나와 똑같은 고민을 했었단다. 엄마는 좋아하는 것으로 직업을 삼으라고 하는데, 본인도 그걸 바라지만 도무지 모르겠더라고.. 그게 가능해? 반문하면서 1년 내내 우울했었다고 털어놓는다. 죽을 때까지 찾지 못한 채 대충 살다 가겠구나 했단다. 결국은 잘할 수 있는 것에서 관심 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했다. 나이와 상황은 다르지만 같은 고민을 했었구나.. 그리고 독하게 찾아냈구나! 대견했다. 문제는 나였지, 참..
아이가 다그친다. 꾸준히 써봐요. 미리 단정 짓지 말고 쓰다 보면 보일 거라고 했다. 식탁 넓이만 한 달력 뒷면을 펼쳐 놓고 엉클어진 생각을 쏟아 놓고 보면 결국은 좁혀져서 근원을 알겠던 것처럼 수도 없이 자기 검열을 하다 보면 투명하게 떠오르는 무언가 있을 것이다. 소설가 김중혁 씨가 TV매체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자신이 좋아하는 글쓰기를 지속하기 위해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라고-- 경제적으로든, 자기를 알리는 도구로 삼든, 아니면 거기에서의 경험들을 소재로 삼든 하겠다는 말이었지 싶다.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의 접점만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나란히 가면 되겠구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