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즐겁지만은 아니한 것은?

by 김하정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연수차 떠났던 큰아이가 돌아올 채비를 한다. 갈 때보다 훨씬 단출해진 짐을 꾸리며 그곳에서의 마지막 영상 통화다. "섭섭하겠다"했더니 "아닌 게 아니라 사람들이 그리울 것 같다"라고 했다.

그만큼 사람들과 잘 어우러져 지냈다는 말로 들려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뭘까?


일출이 일몰 같은, 오후 3시만 되면 어둑어둑해지는 노르웨이의 풍경이 여전히 익숙지 않지만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안빈낙도, 순박하다고 했다. 연구 과정을 브리핑할 때마다 '너 얼마나 잘하나 보자', '거기까지는 기본인 거고, 이것까지는 알까 싶어?' 허를 찌르는 질문에 대비해 왔던 터라 이곳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 했단다.


배워갈 것들을 메모하고 토론해 가며 집중하는 모습들에 벅찼다고 했다. 경쟁 구도에 익숙해있다가 이런 모습들이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고도 했다. 참여한 교수님들이 "박사과정을 여기에서 할 의향은 없냐?" 아예, "비용 걱정 없게 하겠다" 적극적인 잔류를 권유받기도 했단다. 생각해 보겠다고 얼버무렸지만 살짝 갈등했을 만큼 이곳의 분위기가 좋아서 인사치레일망정 기분 좋은 러브 콜이었다고 했다.


머무는 내내 아이의 얼굴이 밝았던 것을 기억한다. 빡빡한 일정이었어도 밤잠 설쳐가며 과제에 치어 살던 서울에서의 생활과는 사뭇 다르다고 했다. 제때 잘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오랜만의 휴식 같다고 할 때마다 마음 한편이 쌉쌀했다. 가끔은 중간중간 빈 시간들이 뭔가 해야 할 것 같고 익숙지 않다고 했다. 그때마다 산책하라고, 주위의 경관들을 바라보면서 주말에는 오로지 힐링하는 데에만 쓰라고 했던 것 같다.


경쟁이 꼭 발전은 아닐 텐데, 주위 풍경 둘러볼 여유 없이 내달리기만 하는 청년의 삶이 너무 고단하구나 싶었다. 급속히 변하는 세상에 익숙해지려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익숙해지기만 하면 안 되고 두각을 나타내라고 말한 적 없다. 하지만 스스로가 체감하는 세상의 속도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을 낳는다.


익숙해질 만하니 떠나오게 된 마음이 어떠리라는 것을 아이의 얼굴이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 석별의 정을 어쩌지 못해 이곳저곳 마트를 뒤져서 아쉬운 데로 베트남 쌀과 기타 재료로 열다섯 줄의 김밥을 말았단다. 어설프긴 했지만 교수진, 학생들까지 K김밥의 위력에 흠뻑 빠졌다고 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음식으로 문화를 알렸으니 나름 국위 선양한 셈이었다.


숙소 앞까지 배웅 나와 준, 이제는 친구가 된 현지 학생이 울먹이더라는 얘기를 할 때 아이의 눈빛도 어리 비쳤다. 공항까지 교수님이 직접 태워다 주시기로 해서 내내 너무 신세 진 것 같단다. 돌아와서도 감사 인사 잊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통화는 끝났다. 노르웨이의 상징인 오로라는 보지 못했어도, 에키베르크 언덕에서 인증샷은 못했어도 아이의 가슴에 또 다른 세계가 들어앉았을 테니 아쉬울 것 없겠다.


공항으로 이동 중에 잠깐 세운 듯 바다를 배경으로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온다. 어지간히 아쉬운가 보다. 그것만이 아닌 실시간으로 여정을 전한다. 네덜란드에 도착, 두 시간 기다렸다가 탑승 완료, 앞으로 12시간이란다. 좀 있다 '형제의 나라 터키'라고 지도를 캡처해 보낸다. 한 달 동안 별 탈없이 임무 완수하고 돌아오는 아이의 귀환을 누구보다도 환영하면서도 다시 경쟁의 바다로 돌아옴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다시 소속될 아이들의 세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니 차라리 그곳에서 내일을 도모함이 낫지 않을까? 갈등이 일었던 것도 적어도 삶이 제 속도로 갈 수 있게는 돼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에이 모르겠다. 내쳐두고 시차적응하고 돌아오는 데로 1부터 10까지는 먹고 싶은 메뉴가 순서까지 정해진 듯 하니, 분주해질 예정이다.


그래, 밥은 먹고 보자! 그 속에 견딜 심이 있을 듯싶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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