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하지 못한 기분을 제공해 드립니다"

by 김하정

둘째 아이가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전공이 디자인 쪽이라 쇼핑몰 꾸미는 편집 일을 돕고 있다. 간단한 작업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시간 투자가 많아서 힘에 부치나 보다. 집에서 컴퓨터로 하는 작업이라 자유롭되 하루 평균 일정 양을 소화해 내야만 개학 전까지 마무리할 수 있다. 그 안에 끝내야 한다는 강박이 따른다.


한 시간마다 간격을 두고 쉬어줘야 할 만큼 피로도가 있는 일이다. 이런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고 생각하면 부모 입장에서는 글쎄다 싶게 짠하다. 작업 후에 바로바로 확인을 거친 오더였으면 좋았겠지만 한참 진행하고 있는 사이사이에 세 번의 오더 변경이 있었다. 푸우 푸~ 아드레날린이 코로 입김으로 터져 나온다.


이럴 땐 난감하다. 졸업하고 세상에 나오면 이런 일쯤 비일비재하다고 미리부터 겁박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 회사 왜 그러냐고 아이랑 합세하여 성토할 수도 없다. 둘 다 아이를 위한 일이 아님을 안다. 미리부터 지치게 할 필요도, 그저 감싸고 돌아서 세상에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일은 더 삼갈 일이다. 다만, 그 일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을 때는 나이, 성별, 선배, 후배 계급장 떼고 효율성을 따져서 얘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첨언할 뿐이다.


하루 할당 양보다 조금 더 하고 일어선다. 기다렸다는 듯이 '패키지여행 상품' 홍보에 나선다.

"이 상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자가를 이용해서 25분쯤 소요돼서 도착 예정이다. 가는 도중 좌우로 이제 막 움트는 봄이 예정되어 있으니 마음껏 눈으로 즐기시길 바란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면 45도 가파른 경사를 올라 채는 동시에 간이 주차장이 있다. 차문을 열고 발을 내딛는 순간 '떳떳하지 못한 기분'을 제공받게 된다. 하지만 후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깨알 같은 기쁨이 마련돼 있다. 그래도 괜찮겠느냐"라고 유혹에 정점을 찍는다.


눈은 웃고 입모양은 신중한 듯하다가 용케도 감행하겠다고 결단을 내린다. 걸려들었다. 유혹은 대게 단짠이 같이 들어 있다. 그 비율이 어디에 비중을 더 두느냐에 따라 상서로움도 판가름 난다. 번복하기 없기로 아예 쐐기를 박는다. "대체 어디 가는데?" "가면서 설명드리겠다." 아빠도 차키를 주머니에 넣고 공범을 자처한다.


익숙한 길을 거치는 듯하다가 점점 샛길로 접어든다. 건물이 예뻐서 웨딩 촬영지로 더 알려진 교회를 지나 목적지에 가까워진다. 오늘따라 유독 경사가 급격하게 느껴진다. 아이가 겁을 먹는다. 다 왔다. 차문을 열고

나서며 "'떳떳하지 못한 구간'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살면서 이런 기분은 자주 느낄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오늘은 괜찮다"라고 안심시킨다.


연두색 철망으로 된 문이 반쯤 열려 있다. 들어가도 돼? 토끼 눈으로 쳐다본다. 이 마을 사람들이 출근할 수 있는 문이다. 후문을 들어서니 뭔가 떳떳하지 못한 연장선인 듯 남자들 몇몇이 웅크린 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우리를 앞세우고 남편도 가세한다. 그래, 영원히 떳떳하지 못할 지어다. 정문이 아닌 후문 쪽에 흡연실이 있는 이유를 알겠다. 둘 다 비공식적이긴 마찬가지다. 서둘러 소굴을 벗어나니 비로소 '하행선 고속도로 휴게소'

오늘 우리는 휴게소 우동를 먹으러 왔다. 비공식적인 후문을 통해서..


어묵우동 곱빼기, 어묵우동, 실속우동 우동으로 대통합이다. 우동 한 그릇에 아이가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가 없다. 그래, 네 앞으로 쏟아질 고단함과 애환을 일일이 들여다보고 타파해 줄 수는 없다. 온전히 네가 감당해 가야 할 네 몫이다. 하지만 네가 당면하고 있는 것이 그 게 다는 아니라고 중간중간 쉬게 해 줄 수는 있다. 별 거 아니라고 많은 것 중에 하나라고 잠시 숨 고르기 하고 출발할 수 있게는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후식으로 소떡을 쥐어준다. 한가닥씩 빼어 물며 감탄사 연발이다. 아이에게 숨이 찰 때마다 얼마든지 엄마 아빠를 사용하라고, 부모사용설명서를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건넨 샘이다. 그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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