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떠난 자리가 말끔하다. 학기가 시작됐으니 각자 위치로 돌아가는 것일 뿐인데 이번엔 좀 다르다. "서로 잘 살다가 또 보자"는 말로 선선하게 보냈지만 허전함과 맞물려 왠지 복잡하다. 중간에 휴학을 거쳐 한 학기 만을 남겨뒀으니 '취업' 앞에 바짝 내맡겨진 듯, 아이들의 마음이 어떨까 짐작이 돼서 미리 마음이 쓰인 것이다.
저 아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밥벌이'를 위해서 고군분투하겠구나. 어른들도 그 문제만큼은 초연할 수 없어서 지금껏 전전긍긍 살고 있지 않은가.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짠하기까지 했다.
과제에 치어 밤낮을 설친대도 당장 먹고사는 문제보다야 다급할까? 그러고 보면 학생 때가 좋았는데, 그나마 좋은 시절 다 갔다 싶은 것이다. 때로는 내 짐 부리고 싶어서 언제 졸업하나 종짓목 댔었는데, 막상 가까워 오니 안쓰러운 맘이 먼저 드는 것은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학창 시절에는 가능성으로 다가오던 것들이 하나둘씩 한계로 부딪힐 때,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기를 바란다. 잠깐 주저앉았다가도 잘 돌아 나와 다른 연결고리를 끼워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벌써 몇 시간째 바람만 많아지고 있다.
나무랄 데 없는 스펙을 가진 선배들이 서류면접에서부터 고배를 마셨거나, 2차에서 떨어지는 일이 생기다 보니 적잖게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가기 전 날 밤에야 슬며시 걱정을 털어놓았다. 한 번에 되지 않으면 부모님 얼굴을 어찌 볼까 미리 걱정이 앞서는 눈치다. 걱정처럼 부질없는 것 없다고 말했지만 위로가 될 리 없다.
그렇더라도 그것은 너의 탓도, 나의 탓도 아니다. 시대의 흐름이다. AI가 등장한 이래로 멀쩡하던 직업들이 무용지물이 돼 가고 있는데 준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급변하는 시대를 따라잡지 못한다고 능력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모할 뿐이라고 일렀다.
한 번에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실패도 공부다'라는 뻔한 말은 하지 않았다. 대학만 나오면 취업문이 열리던 시대가 아님을 서로 잘 알고 있으니 실망하고 미안해하고 그런 것 하지 말자고 했다. 우리 영역 밖의 일은 제쳐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고 했다. 내 안에 있는 아이들에 대한 안쓰러움조차도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기운이 될 리 없다.
복잡할수록 단순해지는 게 답이 되곤 했다. 이럴까 저럴까 미리 끌어다가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 방법 끝에 저 방법을 생각해 내면서 순차적으로 걸어가면 될 것이었다. 여태껏 겪고도 마음이 앞섰다. 이렇게 섬약해서야 아이들과 나의 독립을 이루겠는가. 우선 마음의 독립부터 해 둬야 할 것 같다.
헛헛함도 잠시, 아이들에 가려져서 소홀했던 부분들을 찾아서 새 학기를 맞은 학생처럼 내 자리를 찾아간다. 침구들부터 세탁하려는데 비가 뿌린다. 바람도 함께라서 으스스하다. 햇볕 좋은 날로 미루고, 읽던 책을 마저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무리 끝에 시작이 숨어있으니 하던 것을 계속하는 게 먼저겠다.
아이들도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독립을 연습해 왔다.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안쓰러움 대신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게 같이 의논하고 지원해 주면 되는 것이다. 당사자들은 오히려 담담하게 잘 해내고 있는데 허전함이 앞서 바라보는 사람이 초연하지 못한 것도 같다.
바라던 서로의 독립이 이뤄졌을 때, 이제는 내 할 일 다 했다 만세 부를 수 있을까? 아마도 부모 자식 간에는 없을 것 같다. 사는 내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응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맥 놓지 말라고 마음에 일감 주시는 것이라, 버겁다 말고 감사하며 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