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가 빠르든 늦든 해보려는 맘은 사람을 살게 합니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고민하는 건 그다음 일이고 우선은 마음 가는 데로 해 보는 겁니다.
그림을 전공한 적도 없고 미술시간이 제일 고통이었는데 지역 문화센터 맛보기 강좌에서
지인의 권유로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선 하나만 그어도 칭찬을 폭풍처럼 해주셨던 선생님..
재능기부해 주신 선생님의 뒷배로 정말 잘하고 있는 듯 착각하면서 시작됐더랍니다.
그 칭찬을 빌미 삼아 고래로 살 수 있었고, 어설프면 어설픈 데로 전시도 하면서 이어져 왔습니다.
공동작품을 완성했을 때는 벅찬 맘에 밥도 같이 먹어야 하고 화장실도 같이 가야만 할 것 같은 누구도 못 말리는 동지애로 활활 타오르기도 했습니다.
마치 세상에서 동떨어진 신성한 곳이어야 마땅하다 정의해 놓고 순백이 아니면 용납하지 않겠다는 철통수비를 자처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다 보면 거기에 부합되지 않는 사소한 말에 상처받기도 해서 가까워도 멀어도 발병 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주 가깝지도 말고 너무 멀지도 말고 늘 그만큼에서 나란히 걸어가는 것이 더불어 오래오래 동행할 수 있는 길이 된다는 삶의 지혜조차도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터득됐던 것 같습니다.
그 기억들이 좋아서 생업에 밀려 붓 한 번 쥐어보지 못한 채로 7년 넘게 손놓고 있다가 다시 붓을 들게 했습니다.
얼마 전엔 바로 그 선생님 덕분으로 엄마의 초상화를 마무리할 수 있었고, 아쉬운 부분이 많긴 하지만
유튜브에 올려 주셔서 소소한 유명세를 타보기도 했습니다. 형제들은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곤 합니다.
그 인연에 새삼 감사드리게 됩니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어쩌면 영영 나와는 먼 세계라고 체념하면서 살았을 것을 이만큼 있게 해주셨으니까요.
지금은 전공을 했든 하지 않았던 접할 기회들이 많아서 알게 모르게 실력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제는 문화센터도 몇 해를 거쳐 재수강하는 분들이 포진해 있어서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주눅 들기 십상이지요.
지금에 시작했더라면 펴보기도 전에 보따리 싸 들고나왔을 뻔했습니다.
잘 해보고 싶어서 노력해 보는 것, 나아가 보는 과정을 즐기는 듯합니다.
뭘 꼭 이뤄야 맛은 아니고, 전시를 해야 하고, 꾹 눌러주는 공감이 있어야 하는 것만도 아니라서
지금은 그리고자 하는 것을 내 식대로 그리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몇 번 전시를 거쳐보면서 괜히 붕~ 떠 있게 되는 기분이 거품같아서 끝에는 쓸쓸하였던 탓에 내걸지 말아야겠구나 했지요.
이제는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그리면서 내가 설레고 행복할 수 있어 좋습니다.
기다란 쫄대를 엘리베이터로 가져올 수 없어서 15층까지 계단으로 이동해오느라 땀에 젖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던 남편 얼굴이 생각납니다. 그것도 모르고 양쪽 벽을 치는 소리에 왜 그렇게 소란하게 오냐고 나무랐지요.
한쪽 벽을 전시실로 꾸며 준 덕분에 전시하지 않아도 전시의 기쁨을 마음껏 누립니다.
그전에도 출근하는 길에 맨 먼저 내 그림에 장미 한 송이를 꽂아 놓고 누구지 누구지 설레게 했던 남편입니다.
시댁 식구에 속해있던 남의 편이 제대로 내 편이 되던 순간이었습니다.
이래저래 추억이 많습니다. 추석 전에 내 맘속에 키다리 아저씨로 저장된 선생님을 찾아뵙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