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소화시킬 겸 시민공원을 두세 바퀴 돌기로 했습니다.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합니다. 겨우 한자리 찾아냈습니다.
동화 속 뾰족 지붕의 성처럼 하얀 천막이 산책로 양쪽으로 길게 줄을 이룹니다. 무슨 행사가 있었나? 합니다.
잔디밭 쪽에는 대형 무대가 설치돼 있고 막바지인지 트롯가수가 열창하고 있습니다.
무관하게 걷습니다. 반반 치킨처럼 타원형의 반은 시끌벅적 반은 고요합니다. 딴 세상 같습니다.
자기가 어떤 세계에 속할 것인지 선택은 전적으로 내 손에 달려있음을 느낍니다.
산책하다 말고 갑자기 훅 들어오는 인문학적 접근이 요즘 내 관심사 같아 웃습니다.
한 바퀴를 돌 때마다 극명해진 간극을 실감하는 차에 이번에는 낯익은 이름이 소개됩니다.
'라비던스' 성악 보컬, 이건 봐야 돼! 전력 질주합니다. 빈 의자를 찾아서 들고 앞쪽으로 돌진합니다.
당당하게 셋째 줄 한쪽을 차지합니다. 귀도 귀지만 이럴 땐 시각이 우선이라서 어쩔 수 없습니다.
난 당신들과는 달라, 선 긋던 좀 전까지의 내 입지는 온데간데없고 누군가 놓고 간 응원봉을 주어 들고
이리저리 열심히 흔들어댑니다. 휴대폰으로 영상을 떠 아이에게 전송합니다. 나는 과제하는데 엄만 좋겠다.
약만 올린 격이 됐습니다. 차례가 끝나고 시장님이 노래합니다. 시장님도 연예인이구나 싶습니다.
다시 트롯이 이어지고 조용히 빠져나옵니다. 마치 두 세계를 섭렵하고 돌아온 탕아처럼 여한 없게 됩니다.
경험하지 않은 것보다 경험하는 쪽이 우세함을 인정하게 됩니다, 단지 많은 선택지 앞에서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오로지 내 의사여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매번 선택 앞에서 두렵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수면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무게가 반생을 살고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내가 그나마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으로 최소한 밥벌이는 할 수 있겠는지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세상에 널린 재주는 나와는 무관했고 심지어는 빗나가고, 아직도 그 희박한 것에 기대서 숨바꼭질하고 있는 형상입니다. 10대의 막연함 보다 더 합니다. 10대의 그것은 많은 것 속에 선택이라면 지금의 선택은 몇 안 되는 것을 긁어모아도 될 듯 말 듯 하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에 터닝 포인트를 어떻게 돌아 나올 건지 매번 고민합니다.
어제의 축제는 지난날의 영광처럼 끝났습니다. 너무 가까이 들리는 빗소리에 내다보니 비는 그쳤는데 도로에 스며있는 물기 위로 차들이 지나가며 내는 소리였습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지 않게 시가 되려다 산문이 되더라도, 아예 소설로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나만이 갖는 예민함으로 돌 굴리듯 쓰고 또 쓰기를 반복합니다. 의자 들고 앞으로 앞으로 돌진했듯이 전진만이 나의 살 길. 브라보 my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