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면 되는데..

by 김하정

무리 중에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너무 튑니다. 동시에 눈이 마주친 지인과 이심전심 웃습니다.

스무 살쯤에 식당에서 아줌마들 적나라하게 웃고 떠드는 모습 보면서 서른일곱 살까지만 살아야지 생각했었다고 했더니 지인도 같은 이유로 마흔까지만 살아야지 했답니다. 사람 맘은 똑같구나 했습니다.

얼마나 살면 저렇게 세상 무서운 게 없어질까, 얼마나 살면 저렇게 조심스러운 게 없어질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주위쯤 아랑곳하지 않는 무데뽀 정신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 알 수 없어했지요. 그 무리의 나이테를 가늠해 볼 수는 없었지만 그런 징후들이 내게서 나타나기 전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서른일곱으로 정했었나 봅니다. 전염될 수 있는 질병처럼 생각됐던 모양입니다. 데미안을 번역했던 전혜린 님의 영향도 있었을 테고요..

여하튼 나이는 별개로 민폐는 끼치지 말고 살아야지 했던 거지요.

하마터면 서른일곱 가장 빛나는 나이에 유명을 달리할 뻔했는데 이번에는 강적을 만났습니다. 올 7월부터 합류한 그림 동아리가 그렇습니다. 몇 년을 같이 해온 사람들끼리는 친숙에 농도가 짙어 설까 그림을 그리러 온 건지 얘기하러 온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급기야는 한 분이 총대 메고 도대체 집중할 수가 없다고 쓴소리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오아시스가 따로 없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조용하겠구나 했더니 그분이 결석하는 날에는 확성기를 들이 댄 듯합니다.

늦게 합류한 사람들끼리 남아서 왜 생판 모르는 남의 집 가정사를 듣고 있어야 하냐고 분개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이 시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지 알기에 서로를 위로합니다. 연말까지 가야 하는데 아득합니다.

같이 합류한 지인과 이런 식이라면 내년에는 안되겠다 눈짓으로 결정합니다. 들어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르는 척 옛날 시집살이 3계명을 적용시킨대도 방책은 아니겠다 싶습니다.

누구든 타인의 삶에 누를 끼칠 권한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나이는 더더욱 없지요. 100세의 나이에도 지켜가야 할 것은 있습니다. 역지사지의 마음이면 알 수 있는 것을 굳이 외면하는 것은 분명 이기심의 발로입니다.

사석과 공석만이라도 구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배려가 아쉬운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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