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시골에는 주조장이 있었습니다.
막걸리를 만들어 대량으로 판매하는 곳입니다.
개인에게 소매도 해서 아버지 심부름으로 한 되씩 받아오곤 했습니다.
지금처럼 일회용 용기가 없어서 각자 주전자를 들고 가야 했습니다.
내 키를 훌쩍 넘을 만큼 큰 독에서 기다란 스탠 국자로 물길어 올리듯 퍼담아 줬습니다.
철들 무렵부터는 주전자를 들고 가는 자체가 창피했습니다.
행여 반 친구들과 마주칠까 봐 큰 길 놔두고 논둑길을 택했습니다.
그보다 앞서 심부름 갔다 오면 취한 아버지가 집안을 뒤집어 놓는 게 싫었습니다.
명령 같아서 갔다 오기는 하지만 심부름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도 아닌
여덟 살 그 아이가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죄짓는 것 같았습니다.
입 밖으로 꺼내 본 적은 없지만 가족들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럼 안 가겠다고 떼를 써 볼까 해서 한 번은 싫은 내색을 했습니다.
득달같이 날아온 아버지의 손을 거쳐 저만치 나동그라졌습니다.
귀가 먹먹한 얼얼함보다도 전략이 통하지 않았다는 실패감에 더 멍해졌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그 심부름은 계속해야 했습니다.
그 대신 말을 아끼기 시작했습니다.
삼시 세끼 때마다 진지 잡수라고 고하는 일은
막내 몫이라서 말을 안 할 수는 없고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진지 잡수세요'를 '식사하세요' 로 줄이고 한 글자가 어디냐고 만족해하면서
소심한 복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다음은 '밥 드세요'였던 것 같습니다.
기억이 오래됐다는 이유로 추억이 되진 않습니다.
여덟 살 아이가 50이 넘었다고 아버지를 추억하지 않듯이 기억은 해묵을수록 기억일 뿐입니다.
다만, 자꾸 말 수가 줄었던 여덟 살 그 아이를 추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