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인연

by 김하정

자의반 타의 반 퇴사를 하고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구직활동 프로그램 중 '집단 상담'을 받았습니다.

3일 동안 16명이 4명씩 조를 이뤄 12시간을 같이 하면서 공감하고 웃고 교류했습니다.

그때 마음으로는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고 정보 공유하며 지낼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엔 불문율처럼 전화번호를 묻지 않았고 적당히 인사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그 시간들이 아깝지 않았는데 특정하게 궁금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미 서로의 얘기를 들어버려서 새로움이 없어 설까 그 이상은 알고 싶지 않은 걸까

그것만은 아닐 텐데도 서로가 똑같이 궁금하지 말자 약속이나 한 것 같았습니다.

프로그램 특성상 취업에 진심이어서 사람보다는 일에 집중된 것도 있겠지만 인연을 쉽게

만들고 싶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하나의 인연을 맺기에는 12시간은 미미할 수 있고 단기간에 서로를 안다고 할 수 없어서

조심스러운 것도 있습니다.

급변하는 세상의 움직임에 모두가 낯설어서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하겠거니와

마음과 달리 경계하는 것도 같습니다.

달리 생각하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잠깐 동안 하나의 목적으로 만나 이루고 나면

흩어지는 이 관계 또한 나름 소중한 '시절 인연'이겠구나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가까웠던 사이도 데면데면해지려면 한순간이고

긴 시간 쌓아 온 추억도 그 앞에서는 무색하게 맥을 놓습니다.

처음이라서 낯섦은 당연한 건데, 익숙했는데 낯섦에는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르고 걸러진다 해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태세가 돼 있습니다.

나이 먹어 좋은 건 서로에게 긴 해명을 필요로 하지 않고도 연연하지 않게 됩니다.

인연이란 애쓴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요.

이만큼의 인연도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할 만큼의 귀한 인연이라 생각하면 나쁘지 않습니다.

결국은 둘 다 시절 인연이었구나 싶다가도 길고 짧음이 뭐 대수일까 싶습니다.

모든 인연은 섭리처럼 시기가 정해져 있는 듯하니까요.

애초에 '시절 인연' 이었던 것을 애써 '평생 인연'으로 끌고 가보려고 억지를 부려서도,

짧다고 아쉬워할 일도 아닙니다.

그러고 보면, 만날 때 반갑고 헤어질 때 가볍게 헤어질 수 있는 집단상담의 '시절 인연'이

뒤끝 없이, 되려 신선하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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