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고 슬슬 아파트 후문으로 나와 4거리 교차로를 건너갑니다.
세무서 앞에서부터 큰아이 다녔던 고등학교 앞까지 운동을 빙자한 산책입니다.
배달 사업을 해보겠다고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이사 온 지도 20년가량, 지금은 그 일을 하지 않는데도
이 앞을 지날 때마다 그때로 돌아가 있습니다.
육아만 하다가 서른 후반에 남편 따라 처음 해보는 배달 일, 출입이 까다로워서 다른 사원들이
기피하는 관공서를 전담했습니다,
건강을 다루는 사업이라 나름 자부심도 없진 않았지만 맞이하는 쪽에서는 잡상인에 불과했고
노동력이 수반되는 일이라 주기적으로 리셋이 필요했습니다.
초기화는커녕 건물 앞에서 심호흡을 몇 번씩 하고 나서야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자꾸 작아지고만 있었습니다.
그날도 세무서 앞에 주차하고 가방을 챙겨 나오는데 건물 한쪽 위로 기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징하다 대한민국! 굵은 붓글씨체라 눈이 시원했습니다. 사투리가 미담처럼 유행할 때라 신선했습니다.
올림픽이 끝날 무렵 기대 이상의 쾌거가 있었고 너도 나도 응원하느라 밤잠 설치기도 해서 관공서에서도
이렇게 부응해 주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렇지, 우리나라 선수들 근성들이 징하긴 하지! 잘 싸웠다. 아주 잠깐 다 잊고 깔깔거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웃어 본 것 같았습니다.
어? 이 지역 사투리도 아닌데 미심쩍어 다시 보니 '장하다. 대한 미국!'이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관공서에서 '징할' 리는 없지, '장하고' 야 말지. 현수막이 바람에 겹쳐있던 것을..
'징하고' 싶었던 내 마음이 들켜서 민망했던 것도 같습니다.
금요일 오후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무사히 한 주가 끝났다는 것과 적어도 이틀은 배달원이 아닌
나로 있을 수 있겠구나 안도감에 안방 문을 닫고 죽죽 울었습니다.
처음에는 놀라 달려오던 아이들도 조용히 문 닫아주는 것으로 엄마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저녁을 준비하고 밥 먹자 했지요.
자기 일에 프라이드가 없는 어른의 모습을 들켜서는 안 됐었는데,
아이들한테 두고두고 미안한 일이었습니다.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군, 멋진 인격을 가져서도 아닌 그저 허대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일상을 부러워만 했습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마음이 지고 있던 때라 '징하게' 단단해지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당당하지 못했고 피하고만 싶었던 그때 처음으로 웃게 해줬고, 나를 돌아보게 해 줬던 말.
지금도 힘에 부칠 때마다 주문처럼 떠올리고 다잡는 말. "징하다. 대한민국!'
'징하다' 보면 '장하게'도 되는 말, 내내 그렇게 추억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