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두유 제조기가 홈쇼핑 전 채널을 휩쓴 적이 있었습니다. 미처 모르고 있던 것을 둘째 언니가
주변인들의 반응이 너무 좋다고 귀띔했습니다. 써 보지는 않았는데 궁금한 눈치였습니다.
그렇다면 아바타를 자처했습니다. 사용해 보고 의외로 괜찮아서 언니들에게 각각 선물했습니다.
저녁에 콩을 불려놨다가 아침이면 물을 채워 넣고 버튼을 눌러 놓습니다
불리지 않아도 된다지만 기계도 무리하면 빨리 마모될 것 같아서 애초에 습관을 들였습니다.
운동 후에 과일과 함께 마시면 아침 대용으로 그만입니다.
1년 넘게 잘 쓰다가 여름 들어서면서 덥다는 핑계로 며칠 거르던 참이었습니다.
슬슬 시작해 볼까 메뉴에 두유를 누른다는 게 빗나가 재차 눌렀습니다.
끓여지는 과정이 있어 뜸 들이다가 작동되는 식으로 일정한 리듬이 있습니다.
너무나 쉽게 갈리는 것이 소리도 이상하다 했더니 주스 모드로 가동됐습니다.
바로잡아보겠다고 중지하고 처음으로 돌아가 이번에는 제대로 작동했습니다.
약간의 차질은 있어지만 그래도 잘 된 것 같아 다행이었습니다.
다 됐다는 신호음에 따라 빈 컵에 굵은소금을 한 꼬집 넣고 두유를 부었습니다.
뜨거워서 잘 저어가며 한 모금 하는데 비릿한 날콩 냄새에 맛도 날콩 맛이었습니다.
가열되지 않은 채 갈아졌던 부분이 전체로 나타났습니다.
과정일 뿐이었는데 전체를 흐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로 묻힐 줄 알았는데 아이에게 버젓이 들통나버렸습니다.
아니 실수하고도 이렇게 흔적도 없이 무마했다고 의기양양하려던 차에 제대로 일침을 놓습니다.
결과만 두유면 됐지 했는데 과정을 무시하면 이렇다네요.
맛도 맛이었지만 꺼내고 제조기 안을 들여다보니 눌은밥처럼 밑바닥이 눌려 있어 영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물에 불려놓고 한참 후에야 철 수세미를 동원해서 해결하고 나니 기운이 쫙 빠졌습니다.
잘 하던 것도 한 번 부주의로 이렇게 번거로워 지구나 새삼 절감합니다.
주스 맛 두유도, 두유 맛 주스도 아닌 날콩 주스 맛 두유를 숙제처럼 마시며 으으 도리질을 쳤습니다.
홍역을 치렀으니 내일은 정갈한 마음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손가락질 잘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