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 후에 또 먹겠지만

by 김하정

임재범의 고해도, 신부님 앞에 고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는 따라 부르기 어렵고, 하나는 자기의 잘못을 낱낱이 고하는 일이라 매번 숨 고르기를 해야만 합니다. 가끔 현실적인 내게 종교란 어떤 의미일까 들여다볼 때가 있습니다. 모태신앙이나 그런 건 알지도 못했고 어렸을 적 엄마 치맛자락 잡고 절에 따라다닌 게 전부였으니까요. 그렇게 종교와는 무관하게 지내다 큰아이 대학 입시 때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의식주 외에는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기도라도 해 주자는 마음이 계기였습니다.


두 손을 모을 뿐 앞뒤 없이 바라는 것만 많아서는 안 되겠다 싶었을까요? 기도도 격식을 갖춰서 정식으로 하면 더 잘 들어주실 것도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두괄식이 좋을지, 미괄식이 효력을 더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목요연하게 정돈된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던 것도 같습니다.

종교 입문기가 내가 부족한 부분 채워지면 그만해도 되는 학원 다니는 것쯤으로 생각했던 것도 같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숭배하기 이전에 그저 어제 일을 반성하고 좀 다른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깊어지기는 고사하고 지금도 그렇게 돈독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찌 보면 신앙생활이 되지 못하고 일기 같은 종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일체의 활동 없이 일주일에 한 번 주일미사를 보는 것 외에는 누가 옷자락이라도 잡을까 줄행낭을 칩니다. 주일미사조차도 미사를 보지 않으면 고해성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만들지 않으려는 것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담하지 않고 이어가고 있는 것은 미사 보고 돌아오는 길이 양치한 후처럼 마음의 개운함 같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치의 잘못을 드러내다 보면 미미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까지도 넝쿨째 알아내고 그 습성들을 고쳐보고자 일주일 동안 생각도 몸도 분주해질 테니까요. 아마도 그 분주함을 즐기는 것도 같습니다.

자꾸 자기의 신앙에 의문을 갖는 것도 겸손이 아니라 교만 같기도 해서 좀 진득해질 필요를 느낍니다. 오히려 의문이 생길 때마다 자신을 위한, 타인을 위한 기도로 채워야겠구나 합니다.


12월은 부활절을 앞두고 판공성사가 있는 달입니다. 내 생에 미진한 구석을 들춰내 반성하고, 계획과 실행을 통해 좀 전까지의 나태를 용서받고자 하는 거지요. 일테면 하기로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했지만 이러저러한 계획을 세워 앞으로 잘 실천해 보일 테니 이번 한 번만 봐주세요 하는 겁니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매년 같은 답안지를 제출하고 보면 바보 아니야? 어떻게 초지일관 변한 게 없어? 채근할 법도 한데 용서해 주고 보는 것은 이미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했을 거니까요.

그 나머지는 성취가능할지 아닐지는 본인이 더 잘 알 거라서 맡겨주시는 거겠지요. 반성을 핑계 삼아 슬쩍 내년으로 이월해 놓고 보면 버거워서 덫채일 것도 예상해서 미리 당부하지요. 충분한 성찰을 통해 고해하십시오라고..


1년을 통틀어 대체적으로 뭘 집중적으로 잘못하고 살았는지, 그래서 어떻게 고쳐 나갈 건지도 내 삶의 태도에 스스로 견적을 내보는 것. 거기에 신부님으로부터 첨언을 받고 보속으로 기도를 올리고 풀려나는 것입니다.

'미사 때 하느님 말씀을 낭독하는 독서를 권유받아놓고 이유야 어떻든 요리조리 피해온 것도 잘못이었습니다. 그저 써보겠다고 호기롭게 덤벼놓고 쓰기를 게을리한 것도 잘못이고,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를 언니에게 독박케어 하게 한 것도 잘못입니다. 엄마에게 의무감으로 전화하는 것, 받은 사랑만큼 돌려드리지 못하고 있음을 반성합니다. 혹 무심결에 쏟아낸 내 말에 상처받은 사람은 없었을까. 조만간 보자고 되는대로 던지고 보는 약속 등등 참 많기도 합니다.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합니다.


옆집에서 홍시를 선물 받고 잘 먹었으니 답례로 김장김치 두 포기로 대신합니다. 12월은 부랴부랴 받은 것에 대한 답례를 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도 지은 죄를 사해주셨으니 다시는 죄짓지 않는 것만이 답례일 텐데 그게 가능할까 싶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사는 게 죄지요" 했다는 말이 정답 같습니다. 다시는 죄짓지 않겠다고 하지만 살다 보면 아주 사소한 잘못이라도 보태면 보태게 되지 덜하지는 않으니 하는 말이겠죠.

양치한 후에 개운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안 먹을 수는 없고 먹다 보면 과식하게 되는 것처럼..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먹는 횟수와 비례하게 꼬박꼬박 양치하다 보면 충치도 덜 생기고 때우는 선에서 그치겠지요. 적어도 신경치료까지는, 발치하는 일은 더더욱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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