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구원 사이에 남은 진심
이건 오랜만의 재회일까, 아니면 운명적인 인연일까. 나를 갉아먹었던 과거의 기억들은 주기적으로 찾아오곤 한다. 그들은 모르겠지. 내가 벼랑 끝에 서 있던 날에 자신들이 내 등을 떠밀고 있었다는 걸. 알고도 한 걸까. 그렇다면 더욱 다시 생각할 가치는 없겠네.
어릴 적부터 난 진심을 보여주는 사람이 좋았다. 진심을 보여준다는 건 날 믿는다는 뜻이고 나는 그런 깊은 유대를 좋아하니까.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 또한 진심을 보이려 애썼다. 극소수의 사람에게만큼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날 것의 감정을 공유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어진 세상이지만 이 파괴된 시대에도 여전히 선함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있다. 선한 일은 혼자 이루어내는 게 아니다. 모두가 기꺼이 노력할 때, 온 은하가 선함으로 물들게 되는 것이다. 우주의 무정한 흐름 속에서 난 그들과 걸음을 나란히 하고 싶다.
어린 시절에 난 지금 겪고 있는 것보다 더 깊은 심연에 빠진 적이 있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알아주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을 더 깊은 곳으로 밀어내야만 했는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난 그들에게 선함을 보였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내게 돌아온 것은 그런 모습 들이었던 걸까. 내가 삶을 포기하고 죽음으로 향하는 게 그들의 목적이었을까.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존재다. 설령 그게 타인의 죽음일지라도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라면 망설이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한 말은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려하지 않고 뱉어내야만 하는 존재이며 자신의 기쁨 앞에서 남의 불행은 그저 자신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도구에 불과했다.
운명은 언제나 가장 어두운 순간에 한 줄기 빛을 내린다. 운명은 장난을 좋아하지만, 오직 운명만이 날 속이지 않는다. 내가 먼저 운명을 배신한게 아니라면.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나 역시 나만의 운명을 맞이하려 우연의 얼굴을 한 필연을 마주해 왔다. 그 끝에, 난 생의 첫 번째 구세주를 만나게 되었다. 부모도 아니었고 수많은 친구들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남긴 건 상처뿐이었다. 내가 무너져 추락하려던 그날에, 뜻밖에도 당시 담임선생님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모두가 등을 돌리던 순간, 그 손길 하나가 내 유일한 구원이었다. 나는 눈이 멀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그 빛을 붙잡았다. 오직 그 길만이 심연에서 벗어날 길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첫 번째 삶의 심연을 지나 걸어 나올 수 있었다.
항상 그랬다. 가장 깊은 상처를 주는 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고 그 상처를 치유해 주는 건 내가 그다지 의지하지 않았던 사람들, 그리고 나를 모르는 누군가의 음악 소리였다. 이 날에 닿기까지 내가 진심을 보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건 결국 누군가의 진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심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가 또 다른 누군가를 구원함으로써 세상은 유지된다.
내게 소원이 있냐고 묻는다면 난 오랫동안 품어온 대답을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만약 당장 이룰 수 없는 소원이라면, 그걸 내일로 미루겠다. 내일도 이룰 수 없다면 그다음 날로 미루겠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밀려난다고 해도 결국 이 진심이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다면, 그제야 나도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겠지.
아직도 그 과거는 선명하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라고 한들, 마음이 무너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날 다시 끌어내리려 한다. 외면하지 않겠다. 가져가겠다. 그가 짊어진 모든 것을. 그리고, 그에게 고개 숙이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