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딛고 별하늘에 새긴 서약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긴 고통의 결말을 희마하게나마 마주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수없이 그 결말을 생각하고 받아들이려 애써왔다. 어떻게 보면 거스를 수 없는 것을 거스르려 했기에 아직까지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물가에 돌을 던지며 즐거워했던 시절이 있었다. 물결은 금세 사라지고 마는데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돌을 던졌을까. 답은 간단했다. 그로 인해 수면에 비친 그림자가 또 어떤 기쁨을 만들어 낼지는 돌을 던진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게 기쁨이 아니라 어떤 씁쓸함일지라도 기본적인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내 손으로 행한 일의 결말은 행한 나만이 알 수 있다.
세상에는 혼자 많은 걸 짊어져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애석하게도 나 또한 그중 하나인 것 같다. 여정에 올라 모든 걸 짊어지는 이 선택이 누군가에게 안식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 의미 없는 일은 아닐 거다. 하지만 이 고독을 해소할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얻는다는 전제는 포기해야 한다. 그건 곧 행복을 포기한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고, 그 마모 속에서 내가 버티지 못하게 된다면 이 여정 자체가 끝나버리게 된다.
이 외침은 차가운 우주 속에 파묻힐 찰나의 눈물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통을 느낀 지 일주일이 지난날, 난 끝없는 무력감과 자괴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꿈이 부서진다는 느낌과 심장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꼈고, 모든 걸 포기하고 삶을 반납할 뻔했지만 결국에 난 앞으로 나아갔다.
한 달이 지난날, 더 이상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고독 속에서 난 감정이 뭔지 모르게 되었고, 차가운 서사가 날 삼켜버릴 듯 분쟁을 부추겼지만 결국에 난 앞으로 나아갔다.
한 분기가 지난날, 더 이상 슬픔과 분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감정은 타오르는 불꽃이 되어 나약한 내 안에서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더 이상 이성적인 사고가 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자각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지만, 결국에 난 앞으로 나아갔다.
반년이 지난날, 난 스스로의 운명을 되짚어가며 내가 올라선 안 될 길에 오르려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비로소, 난 더 이상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가슴속에서 인간 본성의 욕망과는 다른 허무와 혼돈이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인간의 뼈에 고통 없이 새겨질 수 없는 그 잔인한 속삭임에 기대, 난 또 한 번, 아니, 수없이 절망하며 결국에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동이 트면 세상의 아름다움을 의심하지 않았던 나의 과거는 가슴속의 심연에 의해 불 타 재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남겨진 건 나다. 수없이 많은 고통을 마주하고, 삼키고, 끌어안았던. 누구보다도 이런 삶을 원치 않았고, 누구보다도 그저 평범한 생을 만들고 싶었던, 지금껏 내쉰 모든 숨결의 고통과 절망이 합쳐진, 그럼에도 그 시간들 사이에서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짊어질, 가장 순수한 염원이자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꽃이다.
하나의 운명은 마치 연극과도 같다. 한 사람은 그 연극의 배우이자 감독이다. 연극 속에서 인간은 운명을 지배할 수 있지만, 동시에 누군가가 각본 밖의 일을 꺼내든다면, 그 갈림길에서는 주사위를 던져야만 한다. 전부 잃을 수도 있고, 전부 얻을 수도 있는, 운명을 건 도박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어떤 운명과 마주하기 전에, 스스로 그 길을 걷고 있었던 법이다. 사람이 운명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운명의 길이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다. 우연을 가장한 감독과 배우의 무대는 그 운명을 지켜낸다. 그는 연극의 주인공으로서, 또 관객으로서, 그리고 누군가의 증인으로서.
인간은 모두 우주의 무언가가 뭉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별의 잔해로 이루어진 존재이니 별하늘의 일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삶의 끝은 그 별하늘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고, 인간의 운명이 별하늘에 존재한다는 길이라는 믿음은 타당하다.
내가 순간을 지나는 우주의 잔해로 태어나 어떤 운명을 끌어안게 된 것이라면, 나와 나를 만든 별하늘의 잔해를 언젠가 다시 우주로 돌려보내주겠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우주의 시선에서 무의미하게 불타오른 이 감정으로 모든 걸 짊어지고, 먼 훗날의 별하늘이, 한 여행자의 맹세를 기억하게 만들어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