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사람이 방송에 나와야지"
나는 병실에서, 남편은 중환자실에서 각자 고난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리 둘 사이를 오가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 두 번 중환자실 면회 시간에 맞추어 남편을 만나고, 내 면회 시간에 맞추어 나에게 와 남편의 안부를 전해주던 사람. 그리고 드디어 내가 휠체어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을 때 중환자실로 향하던 내 휠체어를 밀어주었던 손의 주인. 남편 친구 J다.
사실 J는 애초 간이식 수술 얘기가 나왔을 때 기증자를 자청했었다. 혈연관계가 아닌 이상 복잡하고 지난한 절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증자가 될 수 있음을 자신했었고, 그의 아내에게도 허락을 구할 정도로 애틋했다. 결국 그의 기증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대신 우리 수술 일정에 맞춰 회사에 휴가까지 내며 우리의 안위를 보살폈다. 가족보다 더 한 애정이었다.
며칠째 감지 못해 떡진 머리카락을 아낌없이 드러낸 채 휠체어에 앉았다. 부끄러운 뒤통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위치에서 휠체어를 밀고 있는 그와 함께 중환자실로 향하던 순간, 남편을 볼 수 있다는 마음에 울컥하면서도 그의 친구 J를 향한 고마움이 뒤섞여 복잡 미묘한 마음이 요동쳤다. 솟구치려 하는 울음을 꿀꺽 삼키니 떡진 머리가 쭈뼛 서는 게 느껴졌다.
그저 우정이라 하기에는 부족하다. 둘 사이가 궁금했고 또 부러웠다. 이런 친구가 또 있을까.
수술 후 처음 마주한 남편의 모습은 가여웠다. 치렁치렁한 온갖 선에 둘러싸여 꼼짝달싹 하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주변의 기계들은 끊임없이 ‘띠띠띠’ 소리를 냈다. 외롭고도 고단한 길을 걷고 있는 남편이었다.
“괜찮아?”
눈꺼풀을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이는 그는 하나도 안 괜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그는 말 대신 눈빛으로 물었다.
“나도 괜찮아”
안 괜찮지만, 괜찮은 척해야 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몇 분을 바라보다 손을 한번 맞잡은 것으로 짧은 면회 시간은 끝났다. 하루 두 명에게만 주어지는 면회 시간의 다음 차례는 J다.
날 보러 와준 방송작가 친구 H가 말했다.
“혼자 보기 아까운 분이에요. 저런 사람이 방송에 나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