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불행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음을
서른아홉과 마흔 하나, 창창한 앞날만 있을 줄 알았던 그 시절 우리 부부는 하루아침에 전과 다른 아득한 처지가 됐다. 남편은 간암 투병자, 난 그 곁을 지키는 보호자. 그러다 꾸역꾸역 재발하는 암 때문에 결국 난 간기증자까지 됐다. 이런 와중에 나에게 더없이 고마워할 거라 믿었던 시아버지의 견디기 힘든 언행으로 정신마저 피폐해져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난, 예전과는 다른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고난의 시절을 지나오며 난 살아남기 위해 주문을 외웠다.
남편은 아무 잘못이 없다
일종의 정신승리가 필요했다. 이런 주문이라도 되뇌어야 버틸 수 있는 삶이었다.
내가 겪는 불행의 시작은 모두 남편이다. 내가 세운 이 명제는 어떤 때는 참이고, 어떤 때는 거짓이다. 그 어떤 것도 남편의 의지로 저질러진 일은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가여웠다. 무시무시한 병에 걸린 것도, 세상 누구보다 아들의 아픔을 딱하게 여길 엄마가 곁에 없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은 아빠가 곁에 있는 것도 말이다. 그러다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는 고통이 오면 서운함을 넘어 원망으로 바뀌었다. 누군가를 원망하는 건 대단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내게 일어난 결과를 두고 원인은 그를 향해야 했기 때문에 나를 위로할만한 인과관계를 엮어내는 건 세상 쓸데없는 일에 힘을 쏟는 꼴이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 널뛰는 이런 내 감정이 정처 없이 흘러가게 두다가는 나 역시 큰 병에 걸리지 않을까 싶을 만큼 힘든 나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환자 본인, 남편의 노력 덕분이다. 간암 진단 후 절제술을 받고 나서는 다시는 병과 싸우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개과천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암을 만나기 전과는 180도 다른 사람이 됐다. 암과 함께하는 와중에도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시간을 아껴가며 사는 그를 보고 있으면 나의 게으름이 되려 미안하게 느껴졌다. 지쳐가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운동은 물론이고 식습관, 생활습관을 바르게 했지만 재발은 막을 수 없었다. 암이라는 존재에 배신감마저 들었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다시 찾아오는 암을 몇 번 겪으니 그건 사람의 자력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남편은 최선을 다했다.
본인 아버지로 인한 내 공포를 대하는 자세 역시 최선을 다했음을 안다. 내 편이 되어 내 마음을 대변해 주지 못하는 그에게, 공감과 위로의 말을 전하지 못하는 그에게, 한 번쯤은 아버지의 옳지 못한 행동에 반기를 드는 아들이 되어주지 못하는 그에게 서운했던 적은 셀 수 없이 많다. 이혼을 생각할 만큼 괴로운 나날이었다. 하지만 결혼한 지 15년이 지나고 돌이켜 보니 그의 행동이 맞았다. (옳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의 상황에서 맞았을 뿐) 그는 본인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나보다 30년 넘게 먼저 봐왔기 때문에 무용함을 알았을 테다. 내가 바랐던 말과 행동으로 시아버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면 부자지간은 끊어졌을 거다. 아버님은 아들의 말에 귀 기울여 유연하게 대처하는 대신 아들과의 관계를 부러뜨렸을 거다. 내가 원한 건 그게 아니다. 결국 난 시아버지와의 인연을 스스로 잘라내기로 했지만, 부자지간의 연까지 멀어지는 건 싫다. 장남으로서 아버지와의 절연까지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나은 상황이다.
결국 겪고 난 후에야 깨닫는다. 질리도록 상처받고 나서야 그나마 그 상처로 인해 새살이 돋는다는 걸 절감한다. 남편도 나도 그냥 이렇게, 우리 식대로 살아가면 된다
우리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