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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Nov 26. 2018

CCTV가 보여주지 않는 것들

특수학급에서 만난 학생들 이야기

  학생에게 맞을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의 경우의 수로 다 맞았다. ‘맞았다’라고 쓰고 주춤하는 동안, 키보드에 얹은 내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는 걸 느낀다. 이어 쓰려고 한숨을 푸- 하고 내쉰다. 초등 특수교사. 거창한 사건을 폭로하는 수준은 아닐 테지만 소속을 불투명하게 적고 안심하는 것은 적어도 나와 그 학생에게 어떤 비난이나 시비를 기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특수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넋두리랄까.   


  그 날은 우리 학교 학예회가 오후에 있었다. 정인이는 오전에 감정이 고르지 못했고 가만히 있던 짝꿍을 가리키며 자기에게 칼을 들이대고 위협했다고 담임선생님한테 이르기도 하였다. 담임선생님은 마침 정인이를 보고 있었으므로 그 말이 실재가 아님을 설명하고 수업을 하였다. 정인이는 담임선생님이 살갑게 같이 점심 먹자고 권해도 굳이 거절하였고 결국 담임선생님만 뒤늦게 급식실에 와서 혼자 밥을 먹었다. 반장이 달려왔다. 정인이가 물건을 교실 바닥에 던지고 있는데 친구들이 말려도 계속 한다고 말한다. 옆에서 동생들 급식지도를 끝내고 있던 나는 담임선생님한테 내가 가겠다고 했다.

  교실에 가 보니 정인이는 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나는 흐트러진 물건을 정리하라고 말했다.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분필, 연필꽂이, 가정통신문, 우유 상자, 책상과 의자를 정리했다. 이제 친구들 사이에서 벗어나 숨고르기를 하고 밥을 먹고 부채춤 공연을 해야 했다. 그렇지만 이미 파르르하게 날이 서 있었다. 특수학급 교실에 가기를 요구하고 정인이의 손목을 잡고 복도를 나오면서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정인이는 6학년 여학생이고, 키는 나보다 작지만 체격이 크고 나보다 힘이 세다. 3층 6학년 교실에서 내려오는 계단에서 물밀 듯이 꼬집고 물고 때리고 머리카락을 잡아채어 당기고 밀고 차고 갖은 욕설과 폭언이 쏟아졌다. 학교 행사 직전이라 중재를 해줄 다른 선생님도 찾기 어려웠고 그럴 경황도 없이 순식간이었다. 점심 먹고 돌아오는 담임선생님이 정인이를 붙잡고 특수학급 교실에 데려갔다. 담임선생님이 어머니한테 전화로 알리고 행사를 준비하러 나간 사이에 정인이는 교실 문 옆에 있는 모빌을 잡아 당겨서 나를 후려쳤다. 초벌구이한 별, 꽃, 하트 모양의 조각 작품을 낚시줄로 엮었던 우리의 예술이 돌멩이가 되어 내 몸을 때렸다. 부채춤의 소품인 부채로 내 등과 머리를 여러 번 내려쳤으며 책걸상, 활동지, 여러 교구와 장난감, 공연 후 학생들에게 주려 했던 장미 꽃다발까지 집어 던졌다.


  어머니는 오시자마자 교실의 모습을 사진 찍었다. 나와 담임선생님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머니는 받아들이기 힘든 광경에 펑펑 우셨다. 담임선생님은 특수교사와 자녀의 갈등이 있어서 정인이가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 아니라, 이미 감정의 날이 선 상태에서 특수교사를 화풀이의 대상으로 삼았고, 내가 맞는 상황을 묘사했다. 나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감정 조절이 교육적 접근으로는 어려우니 약물이나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추후 학교사회복지사와 함께 상담을 하기를 권했다. 죄송한 표현이었지만 아이의 눈빛과 언행에서 마력을 느꼈음을 고백하였다. 교실 정리를 하고 난 후 아이는 어머니와 집에 갔고, 나는 뽑힌 머리카락을 한 움큼 버리고 바닥에 기대어 앉았다. 강당에서는 학예회 공연 소리가 웅웅거렸다.   


  정인이는 작년에 같은 반 남학생이 자신의 후드티를 벗겨서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학교는 발칵 놀랐다. 나는 관련 학생들과 학부모, 담임선생님과 회의를 했다. 버렸다는 쓰레기봉투를 샅샅이 뒤져도 그 큰 모자티셔츠는 없었다. 정인이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학교 내 설치된 CCTV로 하교하는 모습을 찾아보니 버젓이 그 옷을 입고 집에 가고 있었다. 다음 날, 옷 그림이 맘에 안 들어서 엄마 몰래 버렸다고 고백을 했으나 어머니는 옷을 버린 것은 딸일지라도 옷을 벗긴 것은 확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셨다. 수학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무려 3시간가량 가상의 오빠와 가상의 통화를 하였던 정인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친구들이 괴롭힐까봐 하는 방어기제 또는 심심해서 하는 역할놀이라고 이해한다. 짝꿍이 자기에게 칼을 들이댔다고 말하면 어머니는 짝이 위협한 것 아니냐고 되묻지만 사실 짝꿍은 선택적 함묵증이 있고 정인이와 투명 유리벽이 있듯이 따로 지내고 있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기도 하다. 정인이는 장애 등록을 하지 않았으니 장애인은 아니고, 특수교육지원을 받는 특수교육대상학생이다.  

  이 사건 이후 정인이는 나에게 사과를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와 다시 상담을 하였다. 전문기관의 진단을 권하면서 필요하면 정인이의 학교생활 기록을 제공해드리겠다고 하였다.  마음 한켠에서 꾸준히 놓을 수 없고 힘들었던 것은 정인이와의 팽팽한 몸싸움을 같은 학년 친구들이 보았고 1학년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본 것이다. 그래서 창피하다는 것이 아니라 학교를 처음 와서 배우고 있는 1학년생이 상상할 수 없는 폭력을 목격했고 노출에 대한 사후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숙제가 느껴졌다. 나는 교사와 학생이 후배들과 친구들에게 선배로서 친구로서 어른으로서 선생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해 공개 사과를 하자고 제안을 하였으나, 어머니는 자녀를 궁지에 몰리는 반인권적인 처사이고 교사가 당시에 자녀에게 교육적인 지도를 적절하게 한 것이 무엇인가를 되물었다. 물론 나도 아이를 때렸다, 어떤 교사는 그것을 때렸다고 할 게 아니라 그렇게 맞는 상황에서 정당방어였다고 힘주어 말했고, 아이가 열 대를 때리면 겨우 한두 번 때린 것 아니냐고 옹호해주었다. 1학년 학생들은 정인이가 특수교육대상학생인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정인이는 1학년 어느 교실을 맡아서 청소를 한다. 평소에 장애를 인정하지 않고 복지카드도 없는 자녀이지만, 동생들에게 언니 혹은 누나로서 바르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장애인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어머니의 주장은 난감하다.  


  오늘에서야 퇴근하면서 학예회 때 입었던 옷을 세탁소에서 찾아왔다. 인터넷과 언론에서 유포되는 사제 간의 폭력적인 동영상 속의 주인공이 내가 될 줄은 몰랐다. 적어도 학생과 학부모와 공감하고 소통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렇게 극한 상황까지 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자만이었던 거 같다. 


  얼마 전에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국립 경진학교(특수학교)에서 교사의 학생 폭력에 대한 학부모 인터뷰가 있었다. 학부모회에서 해결책으로 교실 내 CCTV를 요구하였는데, 학교측은 교사를 잠정적인 범죄자로 낙인찍고 학생의 인권침해 소지도 있다는 입장인 듯하다. 기록은 힘이 세다. 작년에 정인이가 성추행을 주장하였으나 알리바이가 성립되지 않은 사건은 CCTV를 통해 사실이 아니었음을 확인하였다. 정인이가 나를 무지막지하게 때리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더라면 어머니께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정인이가 진단받도록 결심할 수 있었을까? 의사표현과 소통이 어려운 학생들의 인권과 특수교사의 인권이 대립되는 영역일 수 있는가? 진실에 솔직하고, 무뎌지는 것에 민감하고, 더디더라도 우직하다면 그것으로 신뢰와 인권은 존중되지 않을까? 굳이 투명한 CCTV로 여실히 담은 정보의 집적이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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