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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R Jul 22. 2024

첫 글 쓰기까지 20일이 걸렸다

일단 쓰기로 한다


브런치 작가신청을 한 지 하루 만에 승인 연락이 왔다.

'우와, 나 브런치 작가 됐다'는 환호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고민으로 이어졌다.

'브런치에는 무슨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 거지.'


간간히 브런치 글을 읽기는 했다. 그냥 정말 읽기만 했다.

쓰는 일반인들이 엄청 많다는 것, 브런치를 통해 책을 내는 작가들이 많다는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정보의 전부였다.

이런 내가 덜커덕 브런치 작가가 되버린 것이다.


한참 퇴고 중인 공저 책을 쓰게 된 과정도 비슷하다. 올 초부터 블로그에 슬슬 글을 쓰다가, 공저를 쓰기 위해 10명을 모집한다는 글을 봤다. 혼자 쓰는 것보다는 부담이 덜하겠구나 싶어서 '한 번 해보자, 미뤄 받자 시간만 가는 거지'하는 마음으로 덜커덕 신청했다. 시간은 흘러 흘러 벌써 3차 퇴고 중이다. 출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퇴고를 하면 할수록 내 글이 점점 더 형편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쓴다는 것에 자신이 없어진 것이다. 준비 없이 책을 써보겠다고 들이댔다가 실력이 들통나고 있는 중이었다.   


공저를 쓴다고 했나,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블로그 글만 써도 됐을텐데...


하지만 그만둘 수는 없었다.

공저는 포함 10명의 작가가 함께 쓰는 것이고, 브런치에서는 빨리 글을 쓰라는, 무시할 수 없는 독촉문자가 오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했다.

나는 글을 쓰겠다고 해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리 고민해도 '나는 글을 쓰는가'에 대한 답은 찾아지지 않았다. 소통? 치유? 표현? 돈? 성공? 모두 이유가 되기는 한다. 하지만 이거다 하는 것은 찾았다.


이유는 못 찾았지만, 나는 그냥 글을 써야 했다.

내 고민의 답은 글쓰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쓰는 것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공저 퇴고는 하루 3시간씩 꼬박꼬박하고, 브런치 글은 '첫 글을 쓰느라 힘들었던 과정을 첫 글로 쓰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더 많이 읽기로 했다. 더 잘 기록하기로 했고, 더 잘 메모하기로 했다.


메모를 잘하려면 어떤 팁이 있을지 궁금해서 <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 글쓰기 (이윤영)>를 읽었다. 그러다가 내 고민의 답을 찾았다.


처음부터 잘 쓰려는 사람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줄이라도 좋으니, 못 써도 좋으니 일단 매일 써야 한다.
그것이 글을 잘 쓰는 최고의 방법이다.
글쓰기에서 '너무 잘 쓰려는 마음'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걸 꼭 기억하기 바란다.

- 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 글쓰기 (이윤영) 중에서


내가 왜 브런치 글을 못쓰고 20일 동안을 미뤘는지 알겠다. 너무 잘 쓰려고 했기 때문이다.

못써도 좋으니 매일 쓰는 것, 꾸준히 쓰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다.



또 이런 글도 만났다.

서평가 금정연이 <아무튼 택시>라는 책에서 했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읽어야 하는 책이 많아"지고, "글을 쓰면 쓸수록 내가 쓰는 글이 싫어"진다는 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많은 이들이 글쓰기를 하다가 멈추거나 포기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렇게 불쑥불쑥 드러나는 '자신의 단점' 때문이다.(중략)
글을 쓰면서 나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면 이는 나를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다. '단점'이 드러난다고 해서 포기하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이를 글쓰기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기회로 삼으면 된다.

- 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 글쓰기 (이윤영) 중에서


나는 지금 "쓰면 쓸수록 내가 쓰는 글이 싫어"지고 있나 보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나의 글쓰기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기회로 삼고 있으니 잘가고 있나 보다.



유시민 작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글쓰기의 의미와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어쨌든 나는 글쓰기가 좋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 일 자체가 주는 기쁨과 만족감 때문이다. 무엇이든 쓰려면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스스로 느껴야 한다.
쓰는 일은 비우는 동시에 채우는 작업이다. 배움과 깨달음이 따라온다. 가지고 있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거나 모르고 있던 것을 새로 알게 되었을 때, 좋은 문장 하나를 쓰고 혼자 감탄하면서 싱글벙글할 때, 나에 뇌에서는 도파민이나 세로토닌이 대량 분비되는 것 같다. 그것들은 사랑에 빠지거나 마약의 복용할 때 황홀감을 느끼게 하는 화학 물질이다." -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지음, 생각의 길, 236~237쪽

- 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 글쓰기 (이윤영) 중에서


결정적으로 유시민 작가님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한 답을 주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좋아서', '재밌어서'였다.   

지금의 나는 그 무엇보다도 글 쓰는 것이 좋다. 무슨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도 말이다.


나의 글쓰기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시작된 글쓰기다.

10여 년 전부터 나의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일하고,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면서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이런 것들은 다 핑계고, 그때는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그리 간절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나이 50이 되니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블로그'라는 편한 글쓰기 플랫폼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고, 그곳에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마음이 급했다. 급한 마음으로 공저도 쓰고 브런치 작가도 신청한 것이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이런 도전을 하지 않았다면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고민 덕분에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한 줄 한 줄 쓰고 고치는 이 반복된 고된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일단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잃어버렸던 진짜 나를 찾고, 글쓰기가 주는 즐거움을 만끽해 보자. 그러면 어쩌면 글을 잘 쓰게 될지도 모르고, 나아가 좋은 일이 당신 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 우선은 글을 쓰는 시간을 사랑하고, 글 쓰는 행위 자체를 즐기자. 그것이 언제나 먼저다.

- 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 글쓰기 (이윤영) 중에서


그래서 일단 쓰기로 한다.

내 글이 잘 쓴 글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꾸준히 쓰려한다.


이 글을 쓰려고 브런치 글들을 검색해 보니, 브런치 작가가 되고 2년 만에 첫 글을 쓴다는 분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나의 첫 글이 2년만이 아니라 20일 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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