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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R Dec 02. 2024

가운을 선물하는 엄마, 복희 님처럼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이슬아

아이들과 함께 한 춘천에서의 하루


아이들과 2박 3일의 일정으로 춘천에 왔다. 아이들이 홈스쿨링을 하게 된 후 이렇게 훌쩍 떠나는 것이 쉬워졌다. 내 일정만 맞추면 된다.

그래도 올해는 쉽지 않았다. 큰 아이가 수능을 봤기 때문이다. 나는 공부도 쉬면서 해야 잘된다고 아이를 꼬셨지만, 정작 아이가 걱정이 많았다. 지난 8월, 제주여행은 아이 과외 선생님까지 다녀오라고 등 떠밀어서 추진된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은 수능도 끝났으니, 맘 편히 왔다. 물론 올해 수능은 연습 삼아 본 것이라 내년 1년 더 고생해야 하지만, 일단은 논다.


마침 춘천 5일 장인 풍물시장이 열려, 시장 구경하고 군것질을 했다. 두 아이가 각각 취향이 다르지만, 재래시장답게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두 아이의 취향을 아는 나는 두 아이 함께 먹을 것, 각자 먹을 것을 적절히 나눠서 사준다.

우리 셋 모두의 공통점은 고양이에 진심인 것. 그러니 당연히 춘천에 있는 고양이 서점 <파피루스>에 들렀다. 2층에 있는 다락방에 앉아 각자의 취향이 담긴 음료를 마시며 고양이 책을 읽는다. 고양이 서점답게 음료를 담는 컵, 컵 받침을 비롯해 대부분의 장식품들이 고양이다. 앞으로는 우리 집 머그컵도 고양이 무늬 있는 것을 사야겠다, 컵 받침은 우리 집에 있는 것과 같다며 수다를 떨다가 또 책을 읽는다. 책 속에서 우리 집 고양이와 닮은 고양이들을 찾아내면 서로 보여주느라 난리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줄어야 할 한 가지


나는 아이들 옆에서 이슬아 작가의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읽었다. 이슬아 작가와 엄마 복희 씨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와 아이들을 생각했다. 시급이 높다는 이유로 누드모델을 하겠다는 자신의 아이에게 엄마 복희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구제 옷 가게에서 파는 가운-그것도 가장 좋은-을 선물하는 분이다. 작가의 아빠는 문예창작학과를 중퇴했고 엄마는 국어교육학과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대학을 가지 못했단다. 이슬아 님이 작가가 된 것은 부모님의 피 때문인가 했다가, 두 분은 줄 곳 무언가를 팔았으니 작가님은 그 모습만 봤을 텐데 했다가, 그 덕에 겁도 없이 자신의 글을 팔아 돈을 벌었으니 역시 부모님 영향인가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누드모델을 한다는 딸 타박하지 않고 가운을 선물한 것은 멋지다. 가운은 작가에게 작업복이고 무기였을 것이다. 내 벗은 몸을 드러내기 전, 모델 일을 마치고 난 고단한 나를 감싸 보호하는 무기. 


나에게는 그런 엄마는 없다. 하지만 쌓여온 경험으로 복희 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게 되었다. 

남들 다 부러워하는 대학을 갔지만, 졸업 후 반듯한 직장 마다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했던 경험. 쥐꼬리만 한 월급 받으면서 굶어 죽지 않았고 대학원 공부까지 했던 경험. 자식 먼저 보낸 부모님들 옆에서 일했던 경험. 상담을 받고 인생이 바뀐 경험. 폭력 피해자, 가해자 옆에서 일했던 경험. 강의하면서 수많은 학생들, 부모들 만났던 경험. 50 나이에 덕질을 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경험 등등이 내 안에 쌓여있다. 심지어 담배를 끊어본 경험까지 있다. 무엇보다도 힘겹게 사춘기를 통과했고, 통과하고 있는 내 아이들 옆에서 버텨본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됐다. 


그리하여 돌고 돌아, 아이들이 이 세상에 왔을 때 빌었던 소망인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를 되새기는 엄마가 되었다. 핸드폰 좀 덜해라, 방 정리 좀 해라, 일찍 자라, 단것 좀 그만 먹어라 등등 잔소리를 하지만 아이 키우는 일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내 인생도 내 맘대로 안되는데 아이들 인생은 오죽하겠는가.

그러니 엄마가 아이들에게 줄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이슬아 작가 어머님의 '가운'같은 사랑.


춘천 헌책방 <아숨헌>의 책 무더기 속에서


보드랍고 따뜻한 가운처럼


<파피루스>를 나와 헌책방 <아숨헌>에 갔다. 책장으로 만들어진 숲 속 같은 공간이었다. 미로 같은 책장들 속을 헤치며, 오래된 책의 냄새를 맡으며 책 구경을 했다.


둘째가 곤충도감을 골라와서 나에게 묻는다.

"이거 사고 싶은데, 샀다가 꽂아두고 안 보면 어쩌지? 예전에도 그랬었는데."

나는 답한다.

"네가 결정해. 네 책이잖아."

큰아이가 거든다.

"근데 그런 책은 있으면 언제든 보게 돼."

"그래? 그럼 나 이거!"

둘째가 자연과학 책장 앞으로 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책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이렇게 자신의 취향을 알려줄 때 잘 기억해 두는 것도 사춘기 아이와 잘 지내는 비법 중 하나다. 취향에 대한 존중은 필수. 그것이 어떤 취향이든. (여기에 잔소리가 들어가면 망하는 거다.)

한참 시집 읽기에 재미들인 큰 아이는 책 더미 속에서 시집 두 권을 골라냈고, 나는 고전 한 권을 골랐다.


책을 사들고 숙소로 가는 길. 이렇게 여행하며 책 고르며 쌓인 추억들이,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싸울 때 무기 중 하나가 되길 빌어보았다. 칼, 창 같은 무기가 아니라 보드랍고 따뜻한 '가운'으로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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