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_ 모아둔 돈이 없다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나를 위한 12주간의 창조성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내 안의 창조성을 깨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 워크숍은 매일 '모닝페이지'를 쓰고, 일주일에 한 번 '아티스트 데이트'를 하며, 매주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올해 초 나 혼자 이 워크숍을 진행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어떤 모임에 참여한 것도 아니다.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홀로 시작했다. '창의력이 부족해'라는 말을 달고 다니는 나도, 이 책을 따라 나 자신을 요리하다보면 창의력이라는 것이 샘솟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책에서 시키는 대로 평일 아침에 '모닝페이지'를 썼고, 매주 계획을 세워 나 자신과 소소한 데이트를 했다. 일요일 오후에는 따로 시간을 내서 다음 주 워크숍 내용을 읽고 과제를 했다.
워크숍의 결과는 어땠을까? 정말 내 안의 창조성이 깨어나 넘실거렸을까?
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였다. 글쓰기와 관련해서 도움을 받기는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창조성과는 거리가 먼 질문이 던져졌다. 그 과정을 정리해본다.
1단계.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처음 몇 주 동안은 신이 났다. 어렴풋이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는데 모닝페이지를 쓰고 아티스트 데이트를 하면서 그 일이 점점 더 구체화되어갔기 때문이다. 아티스트 데이트 시간을 활용해 답사를 다니고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의 책도 읽었다. 어쩌다 보니 그 일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아티스트 웨이≫에서는 이런 현상을 '동시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온 우주가 나를 돕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일이 곳곳에서 생겼다. 직접 경험하고 관계자들을 만나다 보니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일로 가득 찼다.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내 안에서는 이미 몇 번 그 일을 시작했고, 몇 번은 망했다. 그래도 즐거웠다.
2단계.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꿈꾸던 시기가 흘러가고 초기 비용, 유지 비용 등을 알아보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리곤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나는 도전했다가 망해도 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청소년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였고, 집도 없고 노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50대 아줌마(아줌마라는 표현을 싫어하지만 딱 맞는 표현이기는 하다)였다. 나에게는 실패해도 괜찮을 '돈'이라곤 땡전 한 푼도 없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이 오십 넘게 먹고 새로운 일을 해보겠다고 들썩들썩하면서 돈 걱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나는 이 전 단계에서는 정말로 돈 걱정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나는 지난 인생을 이렇게 살아왔다.
3단계. 나는 왜 이렇게 살아온걸까 자책하는 나날들
창조성을 일깨우기 위해 끄적거리기 시작한 모닝페이지에 돈 걱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돈 걱정은 나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0시간 일하고 몇 천을 벌 수 있다', '소액만 있어도 0억을 벌 수 있다'는 광고들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SNS에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돈을 번 수많은 사람들의 사례들이 넘쳐나는데 그동안 나는 뭐하고 살았나 싶어졌다. 돈 욕심이라곤 없이 살아온 지난날의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이 와중에 돈 안되는 글쓰기를 하겠다고 애쓰고 있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책을 써서 돈을 벌겠다는, 어찌 보면 황당한 꿈속에 있는 50대 아줌마였다.
게다가 새 학기가 되면 들어오던 강의 의뢰가 작년의 반의반으로 줄었다. 강의 일정이 없는 텅 빈 다이어리를 보면서 암담해졌다. 오랫동안 프리랜서 강사였던 나는 퇴사 후 다시 강의 현장으로 복귀했다. 강사라는 직업은 의뢰가 들어와야 수입이 생긴다는 단점이 있지만, 홈스쿨링 하는 두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나에게는 딱 맞는 직업이었다. 게다가 투입 시간 대비 수입도 쏠쏠했다. 그런데 갑자기 강의 의뢰가 뚝 끊겼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12주를 보내고 나니
장장 12주간의 워크숍을 끝낸 결과, "지금의 나의 상태는 한심하다. 더 이상 이렇게 있으면 안 된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라는 현실 인식을 하게 되어 버렸다.
하고 싶었던 일은 뒷전이 되었고,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아티스트 데이트를 한답시고 카페에서 마시는 차 한 잔도 낭비로 느껴지고, 책 사는 돈도 아끼게 되었다. '나는 돈이 없다'가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