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된 고군분투의 경험을 여기 남긴다

50대 여성 재취업 분투기] 4 _ 자기소개서에는 담지 못한 이야기들

by 블루문R

첫 번째 입사 지원서를 넣고 기다렸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니 추가로 지원할 곳을 찾아두지도 않았다. 1차 서류 통과자 발표날, 나에게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당혹감이 몰려왔다. 떨어진 이유가 뭘까. 나이가 많고, 경력은 그만큼 많으니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휩싸였다.

연락을 기다리면서 나는 산더미 같은 쪽파를 다듬었다. 그날에 대해 쓴 글이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큰 아이에게 "엄마 떨어졌어" 하고 담백하게 말해주었다. 아이는 놀랐지만 나는 이미 괜찮아져 있었다. 나 자신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이 정도 실패쯤이야' 할 정도로 나는 나이 들어 있었다. 50년이 넘는 삶 속에서 겪은 수많은 도전과 실패, 그를 기반으로 한 성취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첫 번째 실패이자 첫 번째 도전이었던 거다. 또다시 지원하면 되는 거다.

문득 우연히 SNS에서 본, 120번 넘게 입사지원서를 냈다는 한 20, 30세대의 글이 떠올랐다. 그들의 노력과 아픔이 수십 배로 겹쳐졌다. 그들보다 수십 살 나이 많은 내가 단 번에 취직이 되면 그게 이상한 세상인 거다.

다시 취업사이트를 뒤지며 자기소개서를 쓰는 날들이 이어졌다. A4용지 2페이지 내에 나의 수 십 년의 경력을 정리해서 넣어야 한다. 취업할 곳의 특징에 맞게 어떤 경력은 빼버리고 어떤 경력은 덧댄다. 거짓은 아니지만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내 삶의 어떤 부분은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삭제되고 의미 없어지는 경력이, 내 삶의 이력이 아깝다.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하기 싫은 아프고 고됐던 경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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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둘째 두 돌 될 때까지 일을 쉬었다. 아이들 세 살까지는 내 손으로 키우고 싶다는 마음과 독박 육아가 겹쳐진 선태이었다. 남편까지도 육아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 상황인데, 아이는 너무나도 예민했다. 잠잘 때마다 30~40분씩 울어 젖히는 데다가 낯가림도 심했다. 100일의 기적 같은 것은 없었다. 밤잠을 잘 때도 엄마가 옆에 없다는 걸 금방 아는 아이였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재워 놓고 옆에 누워 작은 전구 같은 등을 켜두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새벽 2, 3시까지 책을 읽고도 다음 날 아이 돌보기에 문제가 없었던, 체력 좋았던 젊은 나이였다. (이때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내 상태가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아이가 걸음마를 할 때쯤 되니 조금 여유가 생겼다. 휴학했던 대학원에 복학했고, 관련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를 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여전히 남편은 있으나마 나한 존재였다. 쉬는 날에도 퍼져서 잠만 잤고, 집안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자격증 시험 보는 전날까지도 남편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거실에서 한참 시험공부를 하다 잠에서 깬 아이를 달래러 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남편은 우는 아이를 달랠 줄 몰랐다. 그렇게 잠을 설치고 자격증 시험을 보러 갔다. 남편은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시험장까지 따라왔다. 시험장이 학교니까 아이를 놀이터에서 놀리겠다고 했다. 시험장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 내가 아이를 돌봐야 했다.


그런데....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 듣도 보도 못한 이론과 학자들의 이름이 쏟아져 나왔다. 감으로 열심히 찍었지만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시험이 끝난 후 아이와 남편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엉엉 울었다. 남편에게 화가 났다. 너무 미웠다. 남편은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아이를 데리고 멀리 가버렸다.

며칠이 지나고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시험에 합격해 버린 거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렇게 울었던 게 우스워져 버렸다. 면접 전형까지 통과하니 더 그랬다. 면접도 썩 잘 본 것 같지 않은데 붙었다. (나중에 합격한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다가 필기시험이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

이렇게 어렵사리 필기와 면접까지 통과해 놓고 실제 자격증 발급을 받은 것은 큰 아이가 10살, 둘째는 7살이 된 7~8년이 지난 후였다. 마지막 단계인 연수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맡아줄 사람이 없는 상황 속에서 수 십일 동안 진행되는 연수를 받는 것은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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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 멜로디를 주는 경험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리가 영혼의 고고학자가 되어 이 보물로 눈을 돌리면, 이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게 된다. 관찰의 대상은 그 자리에 서 있지 않고, 말은 경험한 것에서 미끄러져 결국 종이 위에는 모순만 가득하게 된다. 나는 이것을 극복해야 할 단점이라고 오랫동안 믿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혼란스러움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익숙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경험들을 이해하기 위한 왕도라고 생각한다.

- p30,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지금 나는 이때 따 둔 자격증을 활용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다. 자격증 하나를 따기 위한 지난한 과정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담길 수 없다. 자격증 발급 날짜, 발급 기관만 남고 삭제되는 삶의 기록들이다. 자격증 하나를 발급받는 과정에 버무려진 '내 삶의 형태와 색채, 멜로디를 주는 경험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오직 나만 아는 경험이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다. 나라도 나를 알아줘야지. 그래서 여기 이곳에 그 고군분투를 주절주절 남겨본다. 글을 써서 얼마나 다행인가. 취업에는 실패할 수 있지만, 내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말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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