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일생을 맞이하는 순간, 면접

50대 여성 재취업 분투기] 6_ 뽑는 사람에서 뽑혀야 하는 사람으로

by 블루문R

며칠 전부터 고민했다. 치마를 입어야 하나 바지를 입어야 하나. 뭘 입든 재킷은 걸쳐야겠지. 아이보리 색 재킷이 좋을까, 검정 재킷이 좋을까. 구두라고 볼 수 있는 신발은 굽 낮은 검은색 단화 밖에 없으니 고민하지 않기로 한다. 화장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할까. 원래 선크림 바르고 입술 바르는 정도로 끝내는데 그래도 되겠지. 과한 화장은 할 줄도 모르고 해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다. 이동할 동선도 미리미리 파악한다. 대중교통으로 가기 애매하니 운전해서 가야 하는데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1시간 전에는 나서보기로 한다.


면접이 다가오고 있었다.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맞이하는 두 번째 면접인데, 공공기관이어서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많았다. 일찍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차 안에서 기다렸다. 너무 빨리 가면 어색할 것 같아서 차 안에서 시간을 때웠다. 15분 전쯤 면접장소로 들어서니 이미 많은 면접대상자들이 와 있었다. 여러 분야의 직종을 뽑는지라 젊은 사람부터 나이 든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 정장을 입었지만 편한 옷을 입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저렇게 편한 옷을 입고 면접에 온다고? 생각했는데, 살펴보니 '유기동물 구조 및 보호관리' 직종을 뽑고 있었다. 내가 지원한 분야의 경쟁률은 3:1. 3명 중에 한 명이 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상념에 쌓여있는데 면접 진행하는 직원이 과정을 설명해 준다. 핸드폰과 스마트 워치 등을 모두 끄고, 옆 사람과 대화는 불가하단다.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해 제출한 후 내 순서가 올 때까지 적막감과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수 십 분을 있어야 했다. 또 시간을 때워야 한다. 차에서 시간 보낼 때는 핸드폰이라도 있었지,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뿐이다. 붙으면 홈스쿨링 하는 애들 챙기느라 정신이 없겠는데, 그래도 일을 하잖아 하며 행복한 상상을 하다가, 확률상으로도 그렇고 경력상으로도 그렇고 떨어질 가능성이 더 클 거야,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며 나를 격려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물 한 잔 마시고 우연히 창 밖을 내다봤다. 파란 하늘, 초록 산,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 느닷없이 놀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런, 정신줄을 붙잡아야 해!


드디어 내 순서가 왔다. 면접관이 다섯 명이나 된다. 면접 시간이 15분이라고, 시간이 짧으니 내 대답이 길면 중간에 자를 수도 있다고 했다. 첫 질문부터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 던져졌다. 그 자리에서 내 생각을 끄집어내 말을 만들어 답해야 했다. 마지막 질문까지 허둥지둥 댔다. 나중에는 성질도 났던 것 같다. 나는 말이 빠른 편인데, 흥분하면 더 빨라진다. 내 말이 빠르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면서도 정신줄을 부여잡지 못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5분이 지나갔다. 면접장을 나와 집으로 운전해서 돌아오는 길, 올바른 답이 떠오른다. 후회가 밀려온다. 왜 그 질문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자책하다 생각했다. "얼마 전만 해도 뽑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뽑히길 바라는 사람이 되었구나."




이전 직장에서 나는 수년 동안 직원을 뽑은 역할을 했었다. 채용 공고를 내고 인사위원회를 소집하고 서류 합격자를 결정하고, 면접합격자에게 면접 일정을 통보하고 합격통보와 불합격통보를 하는 것까지 모두 나의 업무였다.


어떤 사람들이 같이 일하게 될까 기대도 되고 걱정도 하면서 이메일로 접수되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검토했다. 서류만 봐도 이 사람은 아닌데, 이 사람은 정말 괜찮은 걸 하게 되는 경우들이 많았다. 자신이 취업하려고 하고 있는 곳의 업무 내용을 이해한 상태에서 자신의 경험을 어필한 경우나, 이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담겨있는 자기소개서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00시에서 태어나서 이러이러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성실하고 끈기 있고~~" 이런 판에 박힌 자기소개서는 첫 줄부터 대충 읽게 된다.

과한 학력이나 과한 경력자를 면접 대상자로 선정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안타깝지만 할 수 없었다. 각 직장마다 담을 수 있는 사람의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가 지원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면접이 꼭 필요했다. 이전의 경험이 도움이 될지 어쩔지 서류만으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면접 장면에서 자신 있게 질문에 답하지만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한 채 떨리는 목소리를 억지로 누르는 사람, 대답을 제대로 못했다고 생각해 다음 질문에 답을 잘 못하는 사람, 어떤 질문을 해도 애매모호하게 답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내 경험상으로는 채용과정이라는 것이 면접과 서류 등을 전체적으로 보면서 판단하기 때문에 면접장에서의 작은 실수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쪽 상황이 변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사람 괜찮네 했지만 지금 뽑아야 할 자리에 맞지 않아 안타까웠던 사람도 있었고,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중 우수한 사람을 골라야 하는 경우도 있으며, 반대로 채용이 급해서 지금 면접 본 사람들 모두가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선택해야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요즘말로 '케바케'인 것이다.


최종 선정된 사람에게 전화를 하는 순간은, 전화를 받는 사람 못지않게 나에게도 기쁜 순간이다. 그 사람의 환희와 기쁨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출근할 때 가져올 서류와 몇 가지 전달 사항을 알려주는데, 전화기 너머로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물론 취업 후 장밋빛만 가득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 사람도 나도 알지만, 그 순간만은 그런 것들은 다 잊힌다.



이렇게 채용의 전 과정을 경험하다 보니 "한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다"라는 정현종 시인의 시구절을 되새기게 되었다. 한 사람의 면접자와 함께 그 사람의 일생, 즉 우주가 온다. 면접 시간 단 몇 분으로 그 사람의 삶의 방향이 결정되고 그와 연결되는 나와 기존의 직원들의 삶도 바뀐다. 매일 9시간 이상을 함께 하게 되는 인연을 맺게 된다니.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면접 준비에 더 많은 정성을 쏟게 되었다. 환대의 마음을 담으려 노력했다. 그 사람은 이 면접장에 자신의 삶의 어느 부분을 쏟아 놓지만 그것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그 사람 뒤에 있는 거대한 우주는 짐작할 수도 없고, 함부로 짐작해서도 안된다. 그러니 그와 만나는 십 여 분의 시간 동안이라도 온전히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공을 들여야 했다.

직원들에게 면접 때 해야 할 질문들을 미리 받아 내가 하려고 했던 질문과 비교해보기도 했고, 면접자를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하기도 했다. 면접자가 면접 장소에 들어오면 면접관으로 앉아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먼저 소개해주었다. 이곳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게 될 텐데,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려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탈락한 사람들에게 문자도 정성스럽게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어쨌든, 우리 회사에 지원 서류를 내기 위해 어느 정도 공부를 했을 테니, 그것만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십 수년만에 면접이라는 것을 보게 되니, 면접관으로 했던 나의 노력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채용과정은 직원을 뽑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직원이 될 사람이 이 회사를 살펴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일했던 업계는 좁아서 면접 때 받은 질문이 소문으로 돌기도 했었다. 이를 테면 "그 나이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 같은 차별과 무시가 가득 담긴 존중 없는 질문들 말이다. 그런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을까.


나는 차별적인 질문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직무와 상관없는 개인사에 대한 질문은 받았다. 게다가 5명의 면접관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나를 보여주어야 했다. 이건 좀 부당하지 않나. 허둥지둥 대답하는 나를 보고, 15분의 시간 동안 나라는 사람을 판단하는 당신들이 누구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력서를 쓰고 자기소개서를 쓸 때부터 노력해 온, 완전한 약자의 위치에 있는 면접자들에게 자기소개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탈락했다. 또 서류를 제출하고, 또 면접을 보게 될 것이다. 면접관으로 일해 봤던 경험상, 계속될 면접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뽑는 사람이 아니라 뽑혀야 하는 사람의 위치에 있다. 내 위치를 자각해야 한다. 현실의 공간에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위치지.

그래도 뽑는 사람의 위치에 있던 나의 경험을 써둔다. 채용 과정에서 완전한 을의 위치에 있는 면접자가 조금이라도 더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내가 또 누군가를 뽑는 위치가 되었을 때, 뽑히는 위치에 있었던 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



p.s

- 민주노동연구원이 올해 3월 발간한 '고용상 성차별 경험과 성별 임금 격차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45.9%가 채용 시 성차별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특히 '채용 시 가족 사항이나 개인적 문제 등 일과 상관없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는 질문에 여성 41.3%, 남성 25.1%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출처 : 아시아경제, 2025년 6월 18일 자, 뿌리 깊은 '채용 성차별' 인식… 블라인드 방식 등 변화 시동 | https://www.asiae.co.kr/article/2025061709565719093)

- 필기시험을 통과한 후 면접 과정에서 직무 관련 질문 외에 “장애 유형, 장애 등록 여부, 약 복용 여부, 약을 먹거나 정신질환 때문에 잠이 많은 것은 아닌지 등” 장애와 관련된 다수의 질문을 받고 불합격된 장애인도 있다. 이 사례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금지하는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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