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곳에서 받은 위로와 격려

50대 여성 재취업 분투기] 8 _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방문하고

by 블루문R

'여성새로일하기센터'라는 곳이 있다. 이곳 홈페이지에는 <여성새로일하기센터는 취업을 희망하는 경력단절 여성 및 미취업 여성에 대한 ONE STOP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합니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예전에는 '여성인력개발센터'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기도 했다.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것도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세 번씩이나.


이곳과의 인연은 우연히 본 SNS 홍보 글에서 시작되었다. 경기도에서 취업을 준비 중인 여성에게 지원금을 주는데, 그게 120만 원이나 된단다.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 소득 수준도 되는 듯하고 실제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으니 혹시나 해서 지원해 보았다. 몇 주가 지나 지원 대상자가 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실업급여를 받을 때와 비슷한데, 대부분 온라인으로 가능해서 편리했다. 취업과 관련한 심리검사 결과, 취업 교육을 받은 것, 이력서를 제출한 이메일 화면 등을 홈페이지 상으로 입력하면 됐다. 단 하나 오프라인으로 해야 하는 활동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1달에 한 번 <여성새로일하기 센터> 방문이었다.


센터의 직업상담사와 전화 통화로 만날 약속을 잡았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막상 약속 날짜가 다가오니 걱정이 앞섰다. 이전의 나의 경력에 대해 있는 그대로 다 얘기하고 제대로 도움을 받아볼까, 아니면 대충 얘기하고 시간이나 때우다 올까 고민이 되었다. 이런 곳에서 받는 상담이 도움이 될까 싶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테다.


약속 당일, 센터를 방문해 상담실로 안내되었다. 직업상담사 앞에 앉는 순간까지도 어디까지 어떤 수준으로 이야기할까 생각했다. 그러나, 상담사가 내가 지원금을 신청하면서 썼던 글(당첨이 될지 몰라서, 실제 상담에 활용될지 몰라서 너무 솔직하게 썼었다ㅠㅠ)을 참고하면서 과거 경력을 물어보는 순간, 억울함과 서러움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경력이 많고 나이도 많으니 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가 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 나이에는 다 그렇겠죠? 하면서 투덜투덜 지금의 나의 상황을 얘기해 버렸다. 오히려 나라는 존재를 생판 모르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속 얘기를 하는 게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직업 상담사가 한마디 했다. "저도 선생님 같은 경력은 처음이에요. 창업을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다소 생뚱맞은 말이었지만 어쩐지 위안이 됐다. 취업 실패의 경험을 계속하는 가운데, 내 경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니 기분이 좋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럴 돈은 없다, 그냥 적은 돈이라도 꼬박꼬박 나오는 직장에 취업하면 좋겠다고 자조적으로 대꾸했다. 그래도 친절한 태도로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해 주는 직업 상담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현실 인식도 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대화를 마치고 상담실을 나서는데 상담사가 덧붙였다. "그간 쌓으신 것들을 잘 활용하면 좋은 결과 있을 거예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경험이 있으셨겠어요. 잘 되실 거예요." 그 한 마디에 갑자기 울컥했다. 뭔가가 나를 건드렸다. 위로도 받은 것 같았고, 용기도 나는 것 같았다. 인사를 나누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면서 문득, 나의 옛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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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여성새로일하기센터'와 비슷한 곳에서 일했었다. 이 글에서는 그곳을 <00 센터>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그곳에서 나는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내담자의 속마음을 들어주고, 적절한 도움을 주는 역할을 했었다. 서류 정리와 사업에 치일지언정, 밀폐되고 방음처리된 상담실에 내담자와 마주 앉으면 바깥의 모든 일들을 뒤로하려 애썼었다. 내가 '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서 풀어놓았던 것보다 더 무겁고 더 힘들고 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했으니까. 경청, 무조건적 지지와 공감을 바탕으로 온몸과 마음을 열어야 했다. 단둘이 마주 앉아 눈 마주치며 얘기 나누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흘러가곤 했다.


이번에 방문자의 입장이 되어보니 여러 상상을 해보게 된다. 그 상상은 한 내담자가 전화기를 들고 통화 버튼을 눌러 상담 일정을 잡는 순간의 망설임부터 시작된다. 나는 지원금을 받기 위해 억지로 방문 약속을 잡았지만, 내가 만났던 내담자들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내 이야기를 듣는 누군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믿을만한 사람일까, 어디까지 얘기해도 괜찮을까, 이 만남이 도움이 될까 등을 가늠하며 고민하게 되는 여러 걱정과 염려를 억눌러야 가능한 일이었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00센터'의 위치를 확인하며 이동거리를 감안하여 외출을 준비하는 마음, '00센터' 건물 앞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찾아 센터 문 앞에 섰을 때 마음, 문을 열고 들어와 '상담 약속을 잡고 왔어요'하고 말하는 마음, 낯선 상담실로 안내되고 상담자와 인사 나누고, '오느라 힘들지는 않으셨어요~~'류의 이야기를 나누는 마음, 여러 가지 서류들을 받아 들고 그 서류들을 작성하는 마음, 드디어 상담사와 마주 앉았을 때의 마음이 하나하나 그림처럼 펼쳐졌다.


내가 만났던 내담자들이 지지받고 격려받았을까, 여기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다음 약속을 잡았을까. 그들이 '00센터' 문을 나서던 뒷모습을 떠올려본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과의 만남에서 조금이라도 위안이라도, 격려라도 받았기를, 그래서 어렵게 냈던 용기가 의미를 가지게 되었기를 기원해 본다. 내가 '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서 그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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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 재취업을 하다 보니 과거의 내가 겹쳐지는 경험들을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과거의 나를 더듬더듬 돌아보게 된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과한 업무, 복잡한 인간관계, 따르지 않는 체력 등등 여러 가지 문제 속에 있게 마련이다. 하나를 처리하면 또 하나의 문제가 터지고, 그 문제를 정리하면 또 다른 문제가 터진다. 본래 해야 할 업무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잡다한 일을 처리하느라 하루가 흘러가기도 한다. 몸도 마음도 지쳐서 될 대로 돼라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정신줄 부여잡고 마음을 다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 그 시절, 나는 그 중요한 순간에 그곳에 온전히 머물러 있었던가 돌이켜 본다.


내가 취업에 성공하게 되면 '이 순간이 그 순간이다'하고 알아차릴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서 받았던 격려와 위안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기운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록 쏟아지는 업무에 너덜너덜해져 있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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